2000년대 초반 화랑과 디자이너 숍이 많던 소호거리 신사동 가로수길의 풍경이 달라졌다. 디자이너의 소규모 패션 매장과 이국적 카페들로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였던 이곳은 대형 브랜드 매장들로 가득찼고 길거리에는 쇼핑객이 넘쳐난다. 갤러리는 많이 남아 있지만 실제 전시를 보러 가로수길을 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로수길은 이제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국내 패션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들의 ‘안테나 스트리트’(소비자 트렌드를 테스트할 수 있는 거리)로 ‘트렌드 1번지’로 떠오르고 있다.
로데오를 찾은 젊은이들도 자연스럽게 가로수길로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특히 2~3년전부터는 대기업의 가로수길 입성(入城)이 이어지면서 대중적인 쇼핑의 메카로 떠올랐다.
나이스신용평가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로데오거리와 가로수길의 고객수는 대조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대표업종을 이용하는 고객수를 기준으로 로데오거리는 2010년 17만4797명에서 2011년 19만2076명으로 9.9%의 증가율을 보였으나, 올해 들어서는 1400명 정도 고객수가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가로수길은 2010년 17만4507명이던 고객수가 2011년 20만9127명으로 19.8% 증가한 데 이어, 올해에는 1200명 정도 고객수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젊음의 거리 가로수길에는 오히려 40대, 50대 이상 고객들의 방문이 최근 3년깐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과거 압구정 로데오가 누렸던 ‘트렌드 1번지’와는 차이점을 나타냈다. 로데오거리와 가로수길의 점포수 변화도 급격한 차이를 나타냈다.
나이스신용평가 상권분석서비스 관계자는 “대표업종의 점포수를 기준으로 로데오거리는 2010년 591개였던 점포수가 2011년 633개로 증가해 7.1%의 증가율을 보였으나, 올해 606개로 떨어지면서 -4.3%의 감소율을 나타냈다”며 “이에 반해 가로수길은 2010년 362개였던 점 수가 2011년 401개로 증가해 10.8%의 증가율을 보였고, 최근 397개로 1% 감소해 그치는 등 압구정 로데오와 가로수길은 가장 극명한 차이를 나타내주는 서울의 대표적인 상권”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SPA(제조·유통 일괄 의류) 매장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패스트패션 매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라로 유명한 패션기업 인디텍스 그룹의 ‘마시모두띠’가 2010년 12월에, 미국 SPA 브랜드 ‘포에버21’가 2011년 6월에 오픈했다. 올해 3월에는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 스파이시 칼라 (SPICY COLOR), 앤더블유피의 스마일마켓 등이 가로수길 메인을 점령했다.
제일모직 아웃렛매장인 ‘ILMO’, LG패션의‘TNGT W’와 상설매장 ‘라움’ 도 들어서 대기업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이영옥 우리부동산 대표는 “지난해부터 대기업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활발해졌으며 올해 가을쯤에는 정점을 이룰 것으로 보여 상권은 더욱 활성활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최고의 ‘패션 1번지’로 떠오르면서 가로수길은 한시적 매장인 팝업스토어가 가장 활발하게 오픈하고 있다. 최근에는 샤넬메이크업, 아모레퍼시픽의 발아식물 화장품 브랜드 프리메라, 인앤아웃버거 등의 팝업스토어가 오픈했다. 편집숍인 오프닝샵은 지난달 20일부터 캘리포니아 브랜드 ‘외찌 3300’을 정식 론칭해 국내에 선보이고 있으며, 가로수길 메인에 공사중인 희망병원 건물에는 MK트렌드의 편집숍 ‘KM PLAY’가 이달 말에 들어선다.
패션과 화장품 브랜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등 그야말로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쇼핑 중심지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과거의 가로수길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아쉬움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가로수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가로수길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비싼 세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과 대형 프랜차이즈만 생존이 가능하게 됐는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턱없이 올리니 갤러리와 개인 매장들은 문을 닫거나 점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며 “문화와 패션이 함께 공존했던 가로수길이 이제는 그냥 쇼핑 거리로 퇴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사동의 D부동산 관계자는 “SPA 브랜드가 들어와 젊은층의 패션 거리로 입지를 굳히고 있으나 대기업이 들어서면서 가로수길만의 정체성을 잃고 지역이미지가 모호해진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며“특히 대기업들이 가로수길에 매장을 출점하기 위해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실제 상가 임대료의 적정선 유지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핫플레이스 ‘세로수길’에는 먹을거리 가득 = 신사동 가로수(은행나무)길 인근 이면도로를 말하는‘세로수길’이 또 다른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바로 푸드거리. 이는 가로수길에 있던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메인거리에서 뒤쪽으로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먹자 골목을 형성됐다. 이로 인해 근린상가 개조를 위한 리모델링도 활발해지고 있다.
세로수길이 인기를 끌면서 강남구청은 세로수길을 관광안내 책자에 표시하고 인근 신사역엔 세로수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들었다. ‘새로수길’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매장도 있다. 현재 세로수길은 복합문화카페로 특성화하기위해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레스토랑과 아트갤러리 그리고 쇼핑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 ‘에스플러스(S+)’가 론칭했다.
G부동산 관계자는 “가로수길의 좁은 2차도로로 보행자 중심의 상권이 형성됐지만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차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특히 세로수길에 있는 신구초등학교의 복합화시설이 2013년에 문을 열 예정인데 이로 인해 주차난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상권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