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은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페이스 메이커’로 또 다시 스스로를 지웠던 작업을 떠올린다. 지난 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마라토너에서 아직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 속 ‘주만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적어도 그의 메소드 연기가 어느 정도는 통한 셈이다.
김명민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아직도 ‘본좌’라는 말은 좀 어색하다”면서 “솔직히 전작 ‘내 사랑 내 곁에’ 보다는 쉬웠다. 전작이 너무 힘들었는지 이번엔 작품 대비 준비가 수월했다”고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내 사랑 내 곁에’를 찍으면서 무려 20kg을 감량했다. 당시 말을 빌리자면 무조건 안먹었단다. 반면 이번엔 마라토너이기에 촬영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어서 수월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아닌가.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보는 데 그냥 뛰는 장면 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뛰고 또 뛰고”라며 “워낙 운동을 좋아해 초반에는 수월했는데 이게 촬영 중반을 넘으면서 장난이 아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워낙 배역 몰입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김명민이기에 이번 마라토너 역을 위한 준비 과정이 궁금했다. 풀코스 경험부터 이봉주 선수를 조련한 삼성전자 마라톤팀 오인환 감독과의 훈련 과정을 소개할때는 눈을 반짝였다. 한 마디로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졌단다.
김명민은 “2000년 풀코스를 4시간10분에 완주한 경험은 있다. 하지만 오 감독님에게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은 뒤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면서 “제대로 된 폼으로 리듬을 타며 뛰다 보면 어느 순간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경험을 한다. 정말 신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아닌 평생 남을 위해서만 뛴 페이스 메이커가 바로 주만호다. 어떻게 보면 실패자다”면서 “후배들에게 무시당할 정도로 궁색한 분위기를 내야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가 택한 장치가 인공 치아다. 시나리오에서 연상된 ‘주만호’란 캐릭터는 흡사 병든 말이었다고.
하지만 그 조그만 틀니 하나가 나중에는 천근만근처럼 온 몸을 짓눌렸다. 우선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금새 피로해졌고, 침이 자꾸만 흐르며 나중에는 치아가 시려와 물도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됐다는 것.
그렇게 자신을 지우고 주만호란 인물을 그려나가는 동안 알 수 없는 동질감에 김명민은 사로잡히기도 했다. 한때 배우를 그만두고 이민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를 경험한 자신과 극중 주만호의 모습이 너무 닮아 있었다. 불편한 다리 설정도 자신과 닮았다며 신기해했다.(실제 김명민은 2002년 영화 ‘스턴트맨’ 촬영 도중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가 조금 불편한 상태다.)
영화 속 주만호의 대사 중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나’란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질문을 김명민에게 다시 건넸다. 그는 “아마 좋아하는 걸 하고 있는 것 같다. 잘 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아하는 이 일을 잘하려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생각이다”고 웃었다.
영화 ‘페이스 메이커’ 개봉을 앞둔 현재 드라마 ‘신사의 품격’ 등 여러 작품의 러브콜이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조만간 출연 중인 재난 영화 ‘연가시’의 촬영이 종료되면 그를 잡기 위한 방송가와 충무로의 쟁탈전이 더욱 치열해 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