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권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크기가 작아 일단 방사선치료로도 쉽게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는 의사도 있었다. 수술도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개복수술이 좋다' '로봇수술을 이용하면 손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부위까지 정확하게 제거할 수 있다'는 의사도 있었다. 또, 최신의 방사선치료법인 양성자치료법, 사이버나이프 등 전립선암에 적용할 수 있는 의료기술이 한둘이 아닌 상황이다.
상담하는 의사마다 본인이 추천하는 치료법이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하니, 환자입장에서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고, 한 번의 선택이 자신의 생명을 좌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의학의 발전과 함께 신약과 신기술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면서 환자들뿐만 아니라 의사들조차도 어떤 치료법이 최선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기술에 대한 비교 평가는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기관에서 발표하는 자료에 주로 의존하고 있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신약과 신의료기술에 대한 정보가 제약회사나 기술 개발자의 홍보성 기사로 대중에게 알려지다 보니 환자들이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함께 건강까지 잃는 피해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안전성에 논란이 되고 있는 로봇수술의 경우도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으로부터 로봇을 인체 수술에 이용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암환자를 대상으로 로봇수술을 시도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다만 '입원기간이 짧다' '일반 수술에 비해 더 안전하다' '합병증 발생 비율이 낮다' '회복이 빠르다' 등 로봇수술이 기존 수술법보다 우수하다는 제조사나 수술병원의 주장이 근거가 있는지는 아직까지 제대로 입증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약청과 같은 품목허가기관과는 별도로 의료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를 담당할 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스웨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의료기술평가를 전문으로 수행하는 국가기관을 설립하여 의료정책결정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배경에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보건복지부산하기관으로 2009년부터 업무를 시작하였다.
식약청이 조건을 갖춘 약제나 의료기기를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특정 약제나 의료기기를 이용하는 의료기술의 유효성, 안전성, 경제성을 다른 의료기술과 비교 평가하여 그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주 역할이다. 이런 의료기술 근거평가가 이루어지면 일반국민들은 특정질환에 어떤 의료기술이 가장 유효한지를 알 수 있고, 의료인들은 의료행위결정에 필요한 근거를 제공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2009년 기준으로 의료비가 GDP 대비 6.9%, 연간 70조원을 상회하는 거대한 의료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조만간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면 GDP 대비 10%를 의료비에 지출하게 될 것이고 100조원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이러한 시점에 의료기술에 대한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평가 자료들은 공적인 측면에서 제한된 의료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여 더 많은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국민들이 의료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 산업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의료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