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일본 산업계가 혼란에 빠지면서 아시아의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중국의 정보·기술(IT) 관련 부품업체와 한국 자동차업계는 일본 외 국가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 기업의 생산 거점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 휴렛패커드(HP)와 델 등에 리튬이온배터리를 납품해온 중국의 선전시비커전지는 일본산 배터리 재료 재고가 3개월 분량 밖에 남지 않았다며 다른 나라에서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이 회사는 일본산 부품 의존도가 50%가 넘는다.
LCD 패널의 70~80%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휴대형 DVD 플레이어 제조업체 포산가오페이전자도 부품난에 직면, 대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모든 부품의 매입량을 1일 단위로 파악해 4차 하청업체의 실태를 조사하는 등 일본산 부품에 의존해오던 한국 일부 기업들도 공급망 점검에 나서고 있다.
70여 나라에 타이어를 수출하는 브리지스톤타이어 인도네시아는 합성고무 가공용 약품 조달처를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꾸기로 했다. 일본 공장이 대지진·쓰나미에 휩쓸리면서 2~3개월 후 상황이 불투명하다는 이유에서다.
독자적인 생산 거점을 갖고 있는 기업들은 증산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달 28일 광양제철소에 연산 200만t 규모의 후판 공장을 준공했다.
이 제철소는 2008년 착공해 최근까지 가동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으로 안정적인 후판 수입에 대한 업계의 우려가 커지자 준공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동남아시아에서는 대지진·쓰나미로 타격을 입은 일본 생산거점을 아예 자국으로 이관시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태국의 경우 생산 거점을 자국으로 옮기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신문은 이처럼 아시아 산업계가 일본 의존도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선명해지는 가운데 일본의 회복이 늦으면 역내 제조업계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경제연구센터(ERIA)의 우메쓰 하지메 연구원은 “대지진 피해 상황을 서둘러 파악해야 한다”며 “이같은 상황이 장기화하면 자동차 산업의 경우, 집적도가 높은 태국 등지로 부품 조달처를 대체할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