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며느리, 뚝심의 CEO로 불리고 있는 현대 여성의 리더상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현 회장이 회장 직에 오른지 7년, 그동안 꿈꿔왔던 일을 현실로 이뤄낸 것이다.
지난 16일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줬다. 현 회장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첫 삽을 뜨고 정몽헌 회장의 손때가 묻은 현대건설을 이제야 되찾았다”며 “지금 해야 할 일은 어렵게 되찾은 현대건설을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대그룹은 22일 오는 2020년까지 현대건설을 연간 수주 150조원, 매출 60조원, 영업이익률 9%대로 올려 세계 5위의 종합건설사로 키우겠다는 ‘현대건설 비전 2020’을 밝혔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비전 2020의 키워드로 ‘글로벌 자이언트(GIANT)’를 제시했다. GIANT는 ‘Green Innovation And Next Technology’에서 따온 말로, 향후 글로벌시장에서 녹색산업과 차세대 기술을 확보해 현대건설을 글로벌시장의 ‘거인’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 같은 비전이 실현된다면 현대건설 수주액은 지난해 15조7000억원에서 2020년에 150조원으로, 매출은 9조3000억원에서 60조원으로, 영업이익은 4200억원에서 5조원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현대건설 인수로 ‘7년 농사’ 결실 맺다= 남편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현 회장에게 현대건설 인수는 숙명과 같은 것이었다.
현 회장은 틈날 때마다 그룹 임직원들에게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으며 취임 7주년을 맞았던 지난달 21일에도 ‘미시온 쿰플리다(Mision Cumplida, 미션 완수)’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을 통해 현 회장은 “지난 칠레 광부 매몰사고 때 구조대원들이 지하 700미터에 69일간 매몰된 33번째 마지막 광부를 구출하며 ‘미시온 쿰플리다 칠레’라는 플랜카드를 품속에서 꺼내들었다”며 “마지막 힘을 모아보자. 그리고 우리도 ‘미시온 쿰플리다’를 외쳐보자”고 강조했다.
결국 현대그룹은 지난 16일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다.
당장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서는 자금조달 내역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해결해야 한다. 현대건설 공동매각주간사는 현대그룹이 제출한 자금조달 증빙 중 현대상선 프랑스 현지법인이 제출한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의 예금 1조2000억원에 대한 자금조달과 동양종금증권과 체결한 컨소시엄 계약서의 풋옵션에 대한 내용에 대해 소명할 것으로 요청한 것이다.
또 자금조달 내용이 투명하게 밝혀져 양해각서를 체결하더라도 실사와 본협상 체결까지 현대건설 노조의 반발과 가격 협상 등도 풀어야 할 과제다.
◇기업가 집안의 딸로 태어나 현대가의 며느리가 되다= 현 회장은 지난 1955년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현 회장은 어린 시절을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우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와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녀는 여성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성개발 등에 특히 고민했다.
현 회장은 “이때 공부하고 체득한 것들이 현재 현대그룹 회장으로서 그룹의 조직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 공동의 비전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현 회장은 1976년 고 정몽헌 회장과 결혼해 현대가의 며느리가 됐다. 정몽헌 회장과의 슬하에 2녀1남을 두고 30년 간을 현대가의 며느리로서, 평범한 주부로 지내면서 조용히 내조에 전념했다.
현대그룹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은 현대가의 며느리로 보낸 이 기간 동안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영철학과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남북경협사업 추진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최고경영자로서의 추진력과 결단력을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뚝심의 CEO’ 현정은 회장= 현대그룹은 지난 1947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 의해 설립돼 반세기 넘게 한국경제 발전의 중심에 있어왔다. 현대그룹은 설립 이래 건설, 조선, 자동차, 전자, 해운 등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보이며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했다.
정 명예회장의 사업유지는 다섯째 아들인 고 정몽헌 회장이 이어받았다. 현대차그룹이 분리된 이후 정 회장은 전자, 해운, 무역, 건설, 남북경협사업 등을 영위하면서 과거의 영광재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지난 2003년 8월4일, 정 회장이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내조에 헌신했던 현 회장은 현대그룹 경영을 책임질 수 밖에 없었다.
현 회장은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대한적십자사 등 사회사업활동에 참여했지만 기업경영에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녀가 현대그룹의 총수로 나섰을 때 주위에선 ‘두 달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현 회장은 취임 직후 정상영 KCC 회장과 경영권 분쟁이 생기며 경영권을 포기하라는 수많은 회유와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현 회장은 8개월 간 대치국면 속에 결국 버텨냈고, 이를 계기로 CEO로서 현 회장의 강인한 모습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맡았고 현대그룹 경영안정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어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아산의 이사회 의장 역할을 수행하며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한편 각 계열사별로 업종과 업력에 걸맞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했다.
이후 지난 2009년 8월16일에는 현대그룹 회장 신분으로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을 추진하는 등 남북경협사업 추진에 노력했다. 현 회장에게 대북 사업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니었다. 시아버지인 고 정주영 회장의 마지막 꿈이었고, 남편 정몽헌 회장의 목숨과도 바꾼 것이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다=현 회장이 현대그룹을 이끌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준 인물은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었다. 장 회장 역시 현 회장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사업을 이어받았던 것.
장 회장은 36세의 평범한 주부에서 기업 경영인으로 변신해 지금은 계열사 18개, 매출 1조80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만들었다.
현 회장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고 일어선 장 회장을 떠올리며 현 회장 역시 용기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 회장은 남편이 못다 이룬 꿈을 꼭 자신이 이루고자 결심하고 현대그룹을 바로 세우고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자리한다. 여성의 몸으로 재계 일선을 이끈다는 것이 쉬운 행보는 아니었다. 그녀는 끝없이 도전하고 과감히 일을 추진해 나갔다.
지금의 현 회장이 있기에 그녀의 앞에는 항상 시련이 있었고 그 시련에 당당히 맞섰다. 숙부와 시동생으로부터의 경영권 방어, 김윤규 전 현대건설 부회장의 비리 연루 의혹, 북한 핵실험에 따른 대북사업 중단, 관광객 피살 사건과 금강산 관광 중단, 천안함 사태 등 다양한 시련이 현 회장의 앞에 다가왔고 현 회장은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냈다.
이같은 그녀의 행보와 경영자로서의 능력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현 회장은 지난 2009년 8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2년 연속 선정됐다.
또 그해 11월에는 국내 여성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주목할 만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