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富村 성북동 언덕서 압구정·청담동으로

입력 2010-10-06 11:20 수정 2010-10-0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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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본 富의 변천]보수 전통 강북 고급 주택가..80년대 이후 편의성 갖춘 강남 부상

서울 강북의 대표적인 부촌(富村) 한남동 유엔빌리지. 한집 건너 재벌 총수의 집이라 할 만큼 부자들이 즐비한 이 단지의 입구는 딱 하나다. 입구 반대편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나머지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를 두고 주민들은 '호리병 구조'라고 말한다.

안전에 민감한 부자들인 만큼 천혜의 요새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도둑이 들어왔다가 나가려면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시대에 따라 변했던 대한민국 부촌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그 과정에서 미래의 대한민국 1%들이 살게될 곳이 그려지지 않을까라는 믿음에서다.

◇1980년대까지 원조 부유층 집결지 ‘강북’= 삼청터널에서 시작해 삼선교로 이어지는 성북동길 언덕배기에 들어선 성북동 고급 주택가. ‘하늘이 낸다’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부촌답게 고색창연한 대저택이 위풍당당하게 즐비해 있다. 이 곳에는 주로 재벌 총수나 중견기업인과 전직 고위 관계가 모여 살고 있다. 지난 7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청와대에서 가까운 성북동이 부촌으로 탈바꿈한 것.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등 대기업 오너들이 당시 이곳에 터를 잡게 된다. 현재 성북동에는 ‘성락원 마을’, ‘꿩의 바다마을’, ‘대교단지’ 등 고급 주택단지가 잇따라 형성돼 있다. 현재도 성북동에는 현대가 로열패밀리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장남 정지선 회장, 차남 정교선 부사장과 함께 성북동에 터를 잡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역시 오래된 성북동 주민이다.

강북에서 성북동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한남동이다. ‘요새’라 불리는 유엔빌리지를 중심으로 하는 한남 1동과 하얏트 호텔 부근의 한남 2동이 대한민국 1%들의 주거지다. 유엔빌리지는 철통같은 보안이 가장 큰 장점. 단지 안에 대사관저가 많아 딱히 사설 경비체제를 구축하지 않더라도 경찰 등 보안이 강하다. 단지가 넓은데도 불구하고 버스가 다니지 않아 이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각 가정에 자가 차량이 가족구성원 수만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빌리지 인근 공인 중개업소 관계자는 “쇼핑은 화려한 강남에서 하지만 잠은 조용한 유엔빌리지에서 자는 게 이 동네 주민의 성향”이라면서 “대다수의 경우 시끄러운 것을 싫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남 2동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갑부촌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김준기 동부 회장 등 주요 그룹총수들의 저택이 자리 잡고 있다. 진짜 부자들은 강북에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을 사고 파는 방식부터가 다르다. 중개업소를 통하기 보다 개인들끼리 직접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중개업소에서 조차 이 동네 집값이 얼마인지 모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예컨데 금액으로 환산하기 힘든 그림 한장을 건네주고 집 한채를 받는 식으로 거래하다보니 가격 자체가 무의미 해진다. 굳이 따지자면 3.3㎡당 5000만원을 호가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이후 교육·쇼핑·한강 메리트 ‘강남’= 부촌도 변하는가. 해외 경험이 많은 신흥부자들이 새롭게 부자대열에 합류하면서 집을 고르는 가치도 달라져 부촌의 위치도 이동했다. 전통적인 부자들이 안전 등 프라이버시를 최고의 가치로 꼽았다면 의사, 변호사 등이 주류인 신흥부자들은 도시의 생활 편의성, 교육 인프라 등 다양한 잣대로 집터를 고르면서 신흥 부촌 강남이 탄생했다.

오늘의 강남 지역이 서울시에 편입된 것은 1963년. 당시 강남은 인구가 3만명도 채 안되는 배밭이 듬성듬성 흩어진 농촌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 인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주거환경이 악화되자 한강 이남을 대대적으로 개발했다.

강남 개발 초기, 강남 부촌시대 개막의 중심에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있었다. 1978년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이던 한국도시개발은 사원용으로 지은 아파트 900여가구 중 600여가구를 고위 공직자 등에게 특혜 분양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지만, 엄청난 프리미엄 액수가 공개되면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후 압구정동은 한양(2729가구), 미성(1233가구) 등 대단지를 형성하며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벨트로 주가를 높였다. 중대형이 주류를 이뤘고 부촌을 상징하는 최고급 백화점 2곳과 명품관, 그리고 높은 명문대 진학률을 자랑하는 학군 등 ‘부촌의 3박자’를 고루 갖추게 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압구정 부촌은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주거 이전 빈도가 낮고 전통적인 부유층들의 지역선호도가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압구정동은 전통적으로 부유층들이 모여 사는 한남동, 성북동, 평창동, 동부이촌동, 강남3구 일대 지역들에 비해 2~3세대들의 타 지역 이전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다시 말해 자녀가 성년이되서도 압구정동 거주비율이 높고, 여타 부촌에 비해 세대별 커뮤니티 결속력이 높다는 것이다.

대치동도 강남 부촌의 한 축이다. 사실 대치동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주목받지 못했다. 바로 인근의 일원동 땅값이 ‘일원’이라서 동네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강남권 내 가장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데다 국내 최고의 입시학원 집결지가 되면서 1990년대 들어 부유층 이동이 가속화됐다. 대치동에는 상위 0.1% 부유층이 압구정동이나 도곡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학자 의사 법조인 고위직 공무원 등이 이 지역의 주택 가격을 견고하게 수성하면서 신흥부촌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선경·미도·은마·쌍용·우성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대치주공 1차를 재건축한 '대치동 동부센트레빌'이 단연 가장 높은 매매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바로 인근 도곡동은 매봉산 아래 산부리에 돌이 많이 박혀 있어 불린 이름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삼성타워팰리스와 대림아크로빌 등 모든 편의시설을 갖춘 미래형 아파트 등장으로 부촌의 집중현상을 이룬다.

특히 타워팰리스 입주 전 대림아크로빌은 수영, 피트니스센터, 실내골프연습장을 갖춘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 역할을 했다. 최근 주상복합의 인기가 조금씩 퇴색되고 있지만 완벽한 보안 시스템 등으로 연예인이나 개인사업자들의 선호도는 여전하다.

청담동 아파트는 강남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다. 하지만 고급빌라촌 만큼은 한남동과 더불어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영동대교 남단에 고급빌라촌은 수십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가다. 재벌가 자제들이나 연예인들이 이 지역을 선호하는 탓이다. 서초구 반포동은 재건축사업을 통해 고급 아파트촌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총 5854가구의 반포자이와 래미안퍼스티지가 각각 2008년 12월과 지난해 7월 입주를 시작하면서 강남아파트의 중심축이 반포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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