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최근 한 달간 ‘첫 여성 탄생’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속출, 보수적인 일본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128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지점장에 임명했고 일본항공(JAL)에서는 첫 여성 기장이, 철도업체 JR 동일본에서는 첫 여성 역장이 탄생했다.
지난 11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는 도쿄 선거구에서 민주당의 렌호(蓮舫) 의원이 사상 최다인 170만표를 획득하며 당선,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가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는 가시적인 현상일 뿐 이면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 각국의 정치 교육 경제 건강 등의 분야에서 남녀평등 정도를 측정해 발표하는 ‘남녀평등지수’ 조사에서 일본은 지난해 134개국 중 101위로 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06년 조사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지수 순위가 상승한 것과 달리 일본은 매년 순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타국의 중앙은행에 비해 보수적으로 알려진 일본은행은 차치하고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둔 다국적 기업인 소니조차 일본의 여성 관리직 비율은 3.5%에 불과하다. 소니 미국 사업부의 여성관리직 비율은 32.3%로 월등히 높다.
JP모건의 간노 마사아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여성의 사회 참여율은 심각하게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30대가 되고, 출산을 하게 되면 그것을 계기로 침체되는 M자 곡선을 그리고 있다”며 “직장으로 복귀해도 승진 가능성이 낮고 보육시설이 부족한 것도 여성의 사회참여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민간 통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도요경제의 조사 결과 일본의 상장기업 가운데서 여성 임원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반면 미 경제격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에서 여성 임원 비율은 13.5%로 10배가 넘었다.
WSJ은 일본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유는 무수히 많고 복잡하다며 낮은 성장률과 경직된 이민정책, 인구 감소, 육아에 필요한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꼽았다.
특히 WSJ은 가장 큰 요인으로 일본이 엄격한 부계사회인 점을 지목했다.
여성은 원래 순종적이고 가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부계사회의 고정관념 때문에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의 역할모델이 적은 것이 여성의 지위를 정체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BNP 파리바의 나카조라 마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근처에 사는 양친이 아이를 돌봐주지 않았다면 일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현재 일본의 20대 여성들은 선대 여성들보다 보수적이고 역할모델도 없다”고 토로했다.
다만 WSJ은 일본 여성의 사회 진출은 이처럼 저조하지만 최근 잇따른 여성의 약진 소식은 변화의 조짐으로 봐도 좋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