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포화 이커머스 구조조정 신호탄
지난달 초 촉발된 ‘티몬·위메프(티메프)’의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 여진이 여전하다. 1조 원 이상의 판매대금이 증발하면서 입점업체들은 부도 위기에 내몰렸고 경영진들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고객 신뢰가 무너진 데다 대규모 판매자(셀러) 이탈로 인해 10년 이상 사업을 이어온 티메프는 사실상 공멸했다. 이를 기점으로 K이커머스 시장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22일 이머커머스업계에 따르면 티메프 양사는 ‘개점휴업’ 상태다. 티몬은 홈페이지 공지 등을 통해 “앱은 운영되고 있으나 혹시 발생할 수 있는 고객과 입점업체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당분간 주문이 불가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위메프도 “상품 주문 시 배송 지연이나 불가, 결제 취소 또는 환불이 어려울 수 있다”고 공지했다.
2010년 문을 연 티몬과 위메프는 설립 15년 차를 맞은 중견 이커머스 기업이다. 티몬은 티켓몬스터(ticket monster), 위메프는 위메이크프라이스(Wemakeprice)의 줄임말로, 국내 1위 이커머스 기업 쿠팡과 함께 ‘이커머스 2세대 기업’으로 통한다. 이들보다 앞선 1세대 이커머스는 인터파크, 다나와, 이베이코리아 등이 있다. 티메프 양사는 특정 상품에 일정한 수 이상의 구매자가 모여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소셜커머스’로 시작, 2010년대 중반 들어 일반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오픈마켓 플랫폼으로 사업 방향을 틀어 성장해왔다.
1990년대에 시작된 1세대 이커머스가 국내 온라인쇼핑 플랫폼의 토대를 닦았다면 2세대 이커머스 기업들은 온라인쇼핑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2010년대 중후반에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들까지 앞다퉈 이커머스 사업에 뛰어들면서 법인 신설과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 결과 쿠팡 외에 신세계그룹 계열 SSG닷컴과 G마켓·옥션(옛 이베이코리아), 롯데그룹 계열 롯데온, SK그룹 계열인 11번가 등이 경합을 벌이는 현재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부침도 있었지만 30년 가까이 꾸준히 성장해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27조3470억 원이었다. 10년 전인 2013년(38조4940억 원)과 비교해 6배가량 성장한 것. 20년 전인 2003년(7조548억 원)이 비해 무려 300배 넘게 파이가 커졌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던 2021년(192조 8946억 원)과 2022년(209조8790억 원)에는 1년 만에 최대 20% 이상 성장하며 몸집을 불렸다.
문제는 엔데믹과 고물가 상황이 겹치면서 국내 이커머스 성장세가 계속 될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이미 대다수 이커머스 기업들이 적자 상황이고 시장 포화에 따른 출혈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가치가 하락하면 투자자 확보 등 출구전략 찾기도 쉽지 않다. 티메프도 2019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였다. 이번 사태로 셀러들이 잇달아 이탈하면서 중소 쇼핑플랫폼들도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알리,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공세도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큐텐이 2세대 이커머스 대표주자인 티메프를 인수하는 바람에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구조조정이 수년간 미뤄졌다고 본다. 그로 인해 썩은 살을 도려내지 못한 티메프에 따른 파장이 더 컸다는 지적이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레드 오션인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됐다”면서 “부실한 재무구조였던 큐텐그룹이 티메프를 인수하면서 시장 재편이 늦어져 입점업체 피해를 키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여타 업체도 출혈 경쟁에 가세해 이커머스업계 전반의 질적 성장이 가로막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