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증원 규모를 두고 의사 단체와 복지부의 견해차가 커지고 있다. 의사들은 대규모 파업까지 불사하고 있어 의료계 혼란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의과대학 정원 조율을 위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보건복지부의 대화는 진전이 없다. 의협과 복지부는 지난해 1월부터 '의료현안협의체'를 운영하며 의료 정책을 논의해 왔지만, 의과대학 정원 관련 안건은 합의에 실패했다. 의협 관계자는 "협의체에 성실히 참여하며 대화했지만, 정부는 대화 내용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정책을 강행하려고 한다"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과와 지방 의료기관에 의사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40개 의과대학 대상 조사를 시행하고 2025학년도에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 2030학년도까지는 최소 2738명에서 최대 3953명까지 증원할 여력이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전국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복지부는 설 연휴 전후로 증원 규모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5학년도 입학 정원을 변경하려면 늦어도 4월까지는 확정된 정원이 교육부에 통보돼야 한다. 증원 규모가 공개된다면 의·정 갈등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이 총파업에 나서며 연휴 기간 의료 체계에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날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4200여 명의 전공의 중 86%가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단체 행동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대전협의 설문에 참여한 55개 병원 중 27곳은 500병상 이상 규모이며, 서울 소재 주요 대학병원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 역시 의대 정원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집단행동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달 11일부터 7일간 회원들을 대상으로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기 위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다만, 의협은 투표에서 총파업 찬성표가 과반을 차지해도 곧바로 실행해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투표 결과도 비공개에 부쳤다.
정재원 의협 정책이사는 "의협과 전공의 단체의 총파업 결정 여부는 별개"라면서도 "정부가 의료계와 소통 없이 의대 증원을 강행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의·정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2월 진행했던 회원 대상 투표 결과를 참고해 향후 의협의 투쟁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들이 총파업을 단행하면 진료와 수술 등이 지연되는 혼란은 불가피하다. 2020년 8월 의사 단체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및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기 위해 단행한 총파업 당시 전공의·전임의 파업률은 각각 68.8%, 28.1%였다. 의원급 의료기관도 8.9%가 휴진해 환자 불편이 발생했다.
의사들을 향한 여론의 반응이 싸늘한 만큼, 의협과 대전협이 무리하게 파업을 강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지난해 11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9.3%가 의대생 증원에 찬성했다.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도 85.6%에 달했다.
이날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의대 증원은 의사 단체 빼고는 모든 국민이 찬성하는 긴급한 국가정책"이라며 "대전협이 단체행동에 나서겠다는 것은 붕괴 위기의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국가적 과제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정부도 강경한 입장으로 대응하고 있다. 복지부는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필요한 모든 조치를 엄정하게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공의들의 단체 행동 참여 여부 조사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라며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지난달 10일부터 보건의료 재난 위기 경보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보건의료 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라 파업·휴진 등에 대비해 상황을 관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