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그룹 컨트롤타워로 역할 확대 가능성도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2009년 3월 경영 복귀 자리에서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 및 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이듬해 이건희 회장이 내놓은 해결책은 미래를 위한 신사업 투자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 일성으로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며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회장 역시 27일 예년보다 앞당겨 실시한 사장단 인사를 통해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부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하며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2010년 이건희 선대회장의 지시로 바이오와 자동차용 전지 등을 삼성의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던 신사업추진단처럼 기존 사업의 연장선에 있지 않은 신사업을 찾아 키우는 전담 조직을 마련한 것이다.
회장에 오른 지 1년이 지난 이재용 회장이 본격적으로 '뉴 삼성'의 밑그림을 그리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글로벌 경영 위기 이후인 2010년, 이건희 회장은 5대 신수종 사업에 23조 원을 투자해 2020년까지 50조 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 중 자동차용 전지(배터리)와 바이오 사업은 삼성의 미래를 책임지는 두 기둥으로 성장했다.
이재용 회장이 이번 사장단 인사를 통해 꺼내 든 '미래사업기획단' 역시 연 50조 원이 훌쩍 넘던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올해 7조 원대 수준으로 추락하며 직면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황금알을 낳던 반도체 사업은 공급과잉 속 올해 3분기 누적 12조 원이 넘는 적자를 냈고, 스마트폰과 TV 사업은 글로벌 수요 부진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사업기획단은 과거 신사업추진단의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을 대비하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쇄신 카드다. 이 회장이 '진정한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한 후 신설된 조직인 만큼, 그룹 신사업 발굴과 인수합병(M&A) 등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미래사업기획단이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로 발전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실제로 신사업추진단장은 당시 김순택 미래전략실장이 겸임했다.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은 전영현 부회장은 권오현 전 회장과 옛 삼성 미래전략실 주요 인사들로부터 두루 신뢰받았던 인물 중 하나다.
특히 미래전략실 부활 당시 삼성전자는 과거 전략기획실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해 미래투자와 전략, 계열사 간 투자 및 업무조정 등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신설된 미래사업기획단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사업기획단이 제대로 궤도에 오른 후, 역할을 한 단계씩 확대해 컨트롤타워로 격상될 가능성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이름을 바꿔가며 58년 역사를 이어 온 미래전략실 해체로 그룹내 조직들은 연결고리를 상당 부분 잃었다. 사업지원(삼성전자)ㆍ금융경쟁력제고(삼성생명)ㆍEPC(설계ㆍ조달ㆍ시공)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사업 부문별로 쪼개진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지만, 이런 구조로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맞춘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2016년 9조7000억 원을 들여 글로벌 전장회사 '하만'을 인수한 이후 7년째 이렇다 할 대규모 M&A가 없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군단장의 지휘 없이 사단장들이 각개 전투에 나선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듯이, 삼성도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미래사업기획단 신설은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을 위한 핵심 엔진을 새로 단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향후 삼성전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활동 및 사업 점검을 위한 일주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길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전망'에 대해 "다들 열심히 하고 계시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