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시장 개입 수준이 선을 넘고 있다. 유통, 통신, 금융, 부동산, 정유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정부가 개입하면서다. 민간주도, 시장중심 등을 내건 현 정부가 기업 경영에 일일이 개입하다 보니 기업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하는 경제가 정치화되는 모양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국내 주요 편의점들은 내달 1일로 예정됐던 아이스크림, 음료 등의 제품값 인상을 보류했다. 약 열흘 전 추경호 부총리의 ‘라면 가격 인하’ 발언 이후 농심 등 라면 업계, SPC와 롯데웰푸드 등 제과·제빵업계에 이어 편의점도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통신업계를 향한 정부의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동통신3사는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의 일환에 맞춰 5G 중간요금제를 출시했지만 정부는 연말까지 5G 최저요금·로밍요금 인하를 추진하겠다며 통신업체를 몰아붙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2월 은행들이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발언한 뒤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 개선 방안을 짜는 것 역시 시장의 자율기능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기조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할 말은 많지만…”이라며 말을 아낀다. 자칫 말을 잘못했다간 정부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할까봐서다. 올해 2월 추 부총리의 주류 가격 발언 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주류 가격 인상 요인 등을 조사하겠다고 나선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물가를 관리하는 건 맞지만 가격 통제 위주 물가 관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실장은 “라면 물가 잡고 또 다른 물가를 잡는 방식으로 한다면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라며 “다음 두더지를 잡는 방식으로 물가를 잡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 시장경제’를 정책 기조로 한 윤석열 정부가 이에 반(反)하는 ‘가격 통제’라는 과도한 개입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기업과 소비자,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소비자물가에 포함되는 품목이 460여 개로 많은 상황에서 정부의 통제 방식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물가 품목이라는 게 굉장히 많고 어느 누구도 관리하기가 어렵다. 원가가 제품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시장경제에서는 가격은 시장이 결정하게 놔두는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