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제조공장에 재직했던 이모 씨는 매일 주‧야간 번갈아가며 12시간씩 10년간 일하면서 건강이 악화돼 현재 일을 그만둔 상태다. 이 씨는 “전체 직원이 100명이 조금 넘었는데 사업주가 법인 쪼개기로 주 52시간제 적용을 피했다. 제도가 시행되는 중에도 현장에선 적용을 못 받았는데, 법적으로 그 이상 일할 수 있게 한다면 근로자들은 몰아서 쉬기는커녕 지금보다 더 격무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극도로 반대하는 것은 ‘몰아서 일 해도 몰아서 쉴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부정 여론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 씨를 비롯해 휴식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도 이같은 반대 목소리에 한몫을 했다.
실제로 14일 이투데이가 인크루트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중소기업 재직자의 78.2%, 중견기업 재직자의 73.9%는 ‘장기휴가를 쓸 수는 있지만 눈치가 보인다’거나 ‘쓸 수 없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제도를 개편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중소기업의 매출과 기업 문화 개선 등 경영 및 근무 여건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논의와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 중소 응용소프트 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씨는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서 일손이 부족해졌지만 여력이 없어 추가 인력을 뽑지 못했다”고 했다. 인건비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매출이 오르면 채용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이건 기업의 도리다. 기업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출이 뒷받침 되면 근로시간 단축과 추가 고용을 할 의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인건비 지원을 확대했다. 종업원 5~49명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준수하기 위해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최대 월 120만 원을 최장 2년간 지원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의 지원보다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기업 인건비를 정부가 평생 책임지긴 어렵다.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안정적인 매출이 전제돼야 한다. 매출 증가로 인건비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되면, 근로시간 단축의 유인도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안정적인 매출과 인건비 조달에도 인력난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5월 중소제조업 555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업체의 42.4%는 주 52시간제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업체들은 ‘구인난’(39.6%)을 가장 큰 이유로 지목했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보니 불가피하게 연장근로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호소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인력난 문제가 인구 감소, 타 업종으로의 이탈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대비 연봉과 복지가 뒤쳐지고, 기업문화가 후진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점이다. 여기다 기업들의 연장근로 요구가 ‘중소기업에 가면 일을 많이 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부채질 하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력난이 다시 인력난을 만드는 악순환의 반복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황경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근로시간제 개편과 연장근로 요구 자체가 중소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계속 형성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 일자리의 경우 근무 여건 등 질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일자리 자체의 질이 좋아질 수 있도록 근로 여건 등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