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견제 위해 ‘범정부’ 정책 마련
“SMR·원전 연료 등 공동 진출 필요”
미국 등 자유진영 국가의 원전 수출이 주춤하는 동안 러시아와 중국이 세계 원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일 ‘한미 원자력 민간 협력방안’ 보고서를 통해 동맹국인 미국과 선진 원전 수출, 원전 연료 공급망 구축 분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세계 원전 수출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보이는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 국영기업인 로사톰(Russia State Atomic Energy Corporation)은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자금 지원, 우라늄 농축, 운영 및 유지보수 등 신규 원전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옵션을 ‘원스톱 패키지’로 묶어 제공한다.
지난해 13개국에서 건설 중인 수출 원전 34기 중 러시아와 중국이 건설하는 비중은 각각 23기, 4기로 전체의 79.4%를 차지한다.
이들이 원전 수출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시기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독일 등 자유진영의 주요 원전 강국들이 탈원전 정책 등으로 원전 수출 역량이 크게 떨어진 시기와 일치한다.
강력한 정부 지원과 국영기업 중심의 원전 수출 체제를 갖춘 러시아와 중국과는 달리 여태까지 미국에서 원전 수출은 대부분 민간기업의 몫이었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해외에 원전을 수출할 때 핵확산방지(Non-Proliferation) 기준을 충족하는지 심사하는 것에 그쳤다.
원전 연료 생산 능력에서도 미국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러시아의 핵군축을 위해 1993년부터 2013년까지 20년간 진행된 ‘Megatons-to-Megawatts’ 프로젝트로 미국은 세계 우라늄 농축시장의 주도권을 러시아에 넘겨줬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세계 원전 시장 잠식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민간기업과 시장에만 맡겨놓았던 원전 산업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원전 산업 경쟁력을 복원시킬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미국 의회도 올해 일련의 법안들을 발의하면서 ‘범정부’ 차원의 원전 연료를 포함한 원전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 마련, 동맹국과의 원전 수출 협력 강화 등을 주문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의회의 정책 방향을 살펴보면 미국 원전 산업 경쟁력 복원의 핵심은 기존 대형원전이 아닌 소형모듈원자로(SMR)와 같은 선진 원전의 개발 및 수출에 치중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의 세계 원전 시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서 작년부터 퍼스트(Foundational Infrastructure For Responsible Use of SMR Technology)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작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퍼스트 프로그램 지원을 공식화했다.
미국은 SMR의 개발 및 수출뿐만 아니라 SMR의 연료로 쓰이는 핼리우(High-Assay Low-Enriched Uranium)의 안정적 확보를 에너지·국가 안보 확보 차원에서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SMR 개발에 필수적인 핼리우 수급도 러시아 로사톰의 원전 연료 자회사인 테넥스(TENEX)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핼리우에 적합한 농축도의 원전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핼리우 농축시설 자체건설은 어렵지만, 미국 내 대규모 핼리우 농축시설 건설사업에 지분투자 또는 EPC(설계·조달·시공) 형태로 우리 기업이 참여한다면 핼리우 수급문제 해결에 있어 동맹국으로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으로 우리나라 에너지·건설 분야 기업과 미국 SMR 분야 혁신기업과의 협력의 물꼬는 트인 상황”이라며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고 SMR를 중심으로 세계 원전 시장 위상 회복을 위해 동맹국과 협력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도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액션플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