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서 무죄로 뒤집혀…벌금 100만원 ‘감형’
의료인의 면허나 의료법인 등의 명의를 대여 받아 의료기관을 운영하려는 무자격자가 개설한, 소위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의 진료행위라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폭행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업무방해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는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지만,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의 구체적인 진료행위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설시했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2015~2017년 서울 용산구 한 병원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161차례 받는 한편, 줄기세포를 이용한 질병 치료 연구 등을 위해 설립된 B 회사에 5억9000만 원을 빌려줬다.
하지만 이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A 씨는 여러 차례 병원을 찾아가 “돈을 당장 내놓으라. 가짜 줄기세포로 병신을 만들었다”며 소리를 지르고 출입구를 막거나 계단에 드러눕는 등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제는 해당 병원이 ‘사무장병원’이었다는 데 있다. 병원은 의사인 C 씨의 명의만 빌렸을 뿐, 실제 운영자는 비(非)의료인인 B 사의 회장이었다. A 씨는 C 씨에게 11차례에 걸쳐 큰 소리를 지르거나 환자 진료 예약이 있는 C 씨를 붙잡는 등 업무를 방해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A 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250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업무방해 부분을 무죄로 판단하고 벌금 100만 원으로 형을 낮췄다. 사무장병원의 운영 업무는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C 씨의 진료행위도 별개의 보호가치 있는 업무로 볼 수 없어 업무방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2심과 달리 판단했다. 대법원은 “무자격자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관에 고용된 의료인이 환자를 진료한다고 해서 진료행위 또한 당연히 반사회성을 띠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의료인의 진료업무가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 되는 업무인지는 의료기관의 개설‧운영 형태, 진료의 내용과 방식, 피고인의 행위로 방해되는 업무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A 씨의 행위와 당시 주변 상황 등을 종합해 보면 A 씨가 C 씨의 환자 진료행위를 방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업무방해죄의 ‘업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