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전원 “과잉금지원칙 반해 요양기관 재산권 침해”
수사 결과 ‘사무장병원’으로 확인돼 수사기관이 기소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의료기관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하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조치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최종 유·무죄 확정 판결 전에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보류하는 이 조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이다.
헌재는 사무장병원에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규정한 옛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 중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고, 해당 법률 조항의 적용을 중지한다고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다만 국민건강보험법이 2020년 12월 29일 개정된 점을 감안해서 헌재는 개정 이후 현행 법률인 국민건강보험법 47조의2 1항 전문 중 ‘의료법 33조 2항’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고, 이 법률 조항은 내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결정했다.
헌법불합치란 ‘하위법(下位法) 내용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선언으로, 사실상의 위헌 선언이다. 법 규정의 위헌성이 드러났지만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그날부터 해당 규정의 효력이 상실됨에 따라 생기는 법적 혼란을 막기 위해 관련법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적 효력을 인정해 주는 헌재의 변형 결정 중 하나다.
헌재에 따르면 청구인은 요양병원에 관한 개설허가를 받아 이를 운영하는 의료법인이다. 청구인의 임원 등은 의료인의 면허나 의료법인 등의 명의를 대여 받아 의료기관을 운영했다는 소위 ‘사무장병원’을 열었다는 범죄 사실로 기소됐다. 이에 건강보험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 47조의2 1항에 따라 청구인에 대해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하는 처분을 내렸다.
이후 청구인은 지급보류 처분의 취소 등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소송 중에 의료법 33조 2항 3호, 국민건강보험법 47조의2 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18년 11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지급보류 처분은 잠정적 처분이고, 그 처분 이후 사무장병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무죄판결의 확정 등 사정변경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정변경 사유는 그것이 발생하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지급보류 처분의 ‘처분요건’뿐만 아니라 이 같은 사정변경이 발생할 경우 잠정적인 지급보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급보류 처분의 취소’에 관해서도 명시적인 규율이 필요하고, 그 ‘취소사유’는 ‘처분요건’과 균형이 맞도록 규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또한 “무죄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하급심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에는 그때부터 일정 부분에 대해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이러한 사항들은 이 사건 지급보류 조항으로 인한 기본권 제한이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지만, 현재 이에 대한 어떠한 입법적 규율도 없다”면서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이 사건 지급보류 조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