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A 씨는 점심시간이 매번 곤혹스럽다. 부서 막내인 탓에 매번 메뉴를 정해야 하는데 최근 외식값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다. 냉면이나 비빔밥으로 하려니 끼니당 1만 원이 넘는 가격에 눈치 보이고, 그나마 저렴한 중국집을 추천해도 매번 자장면만 먹어야 하냐고 핀잔을 듣는다. A 씨는 “작년 만해도 부서원들의 입맛을 고려해 메뉴를 정했지만, 최근에는 가격부터 확인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 상승세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 지역 평균 냉면값이 작년 4월 1만 원이 넘더니, 올해 1월에는 비빔밥마저 1만 원을 기록했다. 맥도날드의 햄버거 단품값은 이미 5000원을 넘어서고, 가성비 식사의 대명사인 편의점 도시락까지 5000원에 육박하며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6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1월 서울 지역 기준 대표 8가지 외식 품목의 평균 가격은 지난해 동기보다 10.8% 올랐다. 가장 가파르게 치솟은 메뉴는 자장면으로 작년 1월 만해도 5769원이던 한 그릇 값은 1년새 6569원으로 무려 13.9% 뛰었다. 김밥 1줄은 2769원에서 3100원으로 12.0% 올랐고, 칼국수값도 8615원으로 10.9% 비싸졌다. 작년 4월 1만 원으로 치솟았던 냉면은 올 1월에는 1만692원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비빔밥은 처음으로 1만 원을 기록했다.
버거로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려고 해도 비용 부담은 크다. 롯데리아는 지난달 제품 판매 가격을 평균 약 5.1% 올렸다. 대표 메뉴인 불고기버거와 새우버거의 단품 가격은 4500원에서 4700원, 세트 메뉴는 6600원에서 6900원으로 비싸졌다. 맥도날드도 평균 5.4% 가격 인상을 단행해 빅맥과 맥스파이시 상하이버거 단품 가격은 각각 4900원에서 5200원으로 올랐다. 맘스터치도 이달 7일부터 가격을 올려 4300원이던 싸이버거 단품은 4600원이 된다.
노브랜드는 주요 메뉴의 판매가격을 평균 4.8% 상향 조정해 대표 메뉴인 ‘NBB 오리지널 세트’의 가격은 5200원에서 5400원으로 비싸졌고, KFC에서는 대표 제품인 징거버거 가격은 5300원에서 5500원으로 약 3.7% 올랐다. SPC가 운영하는 쉐이크쉑 버거도 지난달 25일 버거류 10종에 대해 평균 5.2% 가격을 올렸고, 서브웨이(Subway)도 주요메뉴 75종 가격을 평균 583원 인상했다. 이외에도 미스터피자와 도미노피자, 파파존스 피자도 일부 메뉴 가격을 올리거나 배달료를 인상했다.
가성비의 대명사 편의점 먹거리도 올랐다. 편의점 CU(씨유)는 이달 7일부터 도시락과 주먹밥, 샌드위치, 햄버거 등 간편식품 일부 상품이 7일 최대 6.6% 인상하기로 했다. 기존 4800원이던 백종원미트볼파스타 도시락은 7일 4900원으로 오른다. 모두의급식 간장불고기·모두의급식 마늘제육도 같은 날 같은 가격으로 오를 예정이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지속된 원부자재비 상승으로 인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식값만 오른게 아니다.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도시락을 싸오더라도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다. 가공식품의 경우 1월 참치캔의 10g 당 가격은 228원으로 1년전(206원)보다 10.7% 뛰었고, 어묵은 100g당 1204원으로 전년 동기(1124원)보다 7.2% 비싸졌다. 소비자원은 동원F&B의 참치캔 가격 인상과 CJ제일제당의 어묵 제품 가격 인상이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이외에도 스프와 카레는 1년새 각각 8.5%, 6.9% 가격이 올랐다.
다행인 점은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식품업체들이 인상 철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6일에는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주류업계의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실태조사에 착수하자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롯데칠성음료 등 주류업계는 곧바로 일제히 ‘당분간 가격 동결’을 선언했다.
이어 지난달 28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주요 식품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이달 초 편의점 판매용 고추장과 조미료 및 면 제품 출고가를 인상할 예정이던 CJ제일제당과 내달 1일부터 생수 가격을 올리려면 풀무원은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농심과 동원F&B, 롯데제과, 매일유업, 남양유업, 동서식품, 삼양식품, 오뚜기, 오리온, 풀무원, 해태제과, SPC 등 의 대표 및 고위 관계자가 참석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식품업체들이 정부의 압박에 당분간 가격 인상에 나서기는 어렵다고하니 원재료를 구입해 쓰는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면서도 “외식업은 원재료값 외에도 인건비나 전기료 등의 비용 부담 높아지면서 가맹점주들이 먼저 가격 인상을 제안할 정도로 결이 다르지만, 그래도 정부의 고물가 잡기에 한동안 (가격 인상을) 자제하지 않을까 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