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한 건, 금융당국이 안심전환대출 시행 등 오랜 기간 가계부채의 구조개선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변동금리대출 비중이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77%가 변동금리 대출이며,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65% 수준에 달한다.
정부의 가계부채 구조개선 노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담대를 단기 변동금리 일시상환에서 장기 고정금리 분할상환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미국식 모기지론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국의 국책 모기지유동화기관인 패니메이를 모델로 해 한국주택금융공사를 세운 것도 그 무렵이다. 공사는 그동안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안심전환대출, 특례 보금자리론(예정) 등의 정책 모기지를 공급해왔다. 그러나 설립 후 2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주금공의 역할에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구조개선엔 역부족이었다.
물론 변동금리냐, 고정금리냐의 선택은 소비자(대출 수요자)의 몫이다. 다만, 많은 경우 소비자들은 은행 창구에서 은행원의 의견을 참고해 선택하게 된다. 이면을 보면 은행(대출 공급자) 측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셈이다. 문제는 국내 은행 입장에서 보면 대출을 주금공에 매각해야 하는 장기고정금리대출을 고객에 권유할 유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의 정책 방향은 맞았으나, 모기지 유동화기관을 통한 구현방법이 우리나라 대출공급시장의 현실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선 활성화됐으나 유럽에선 존재하지 않는 국책 모기지유동화기관 중심의 장기고정 모기지 공급방식의 핵심은 은행 등 대출취급기관이 먼저 자체 자금으로 모기지를 실행하고, 단기간 내 대출채권을 국책 유동화기관에 매각해 당초 대출해 준 자금을 상환받는 구조다. 즉, 대출 취급(영업)과 자금공급이 분리돼 있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장기고정금리가 발달한 이유는 예금 기반의 대형 상업은행 중심이 아닌, 단기 시장성 자금을 쓰는 여신전문기관(모기지뱅크)을 중심으로 모기지 취급(영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소규모 저신용 비은행 금융사인 모기지뱅크가 단기 시장성 자금을 조달해 대출을 취급한 후 대출채권을 넘기면 이를 고신용 대규모 국책 유동화 기관인 패니메이 등이 받아서 낮은 금리로 유동화(MBS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대출 취급자는 저신용 기관이지만 고신용 패니메이 등이 자금 공급을 하므로 취급자 신용도와 무관하게 대출금리를 낮출 수 있다. 모기지뱅크도 단기 시장자금으로 대출을 취급했기 때문에 이를 팔아 대금을 마련해야 빌려온 자금을 상환할 수 있어 모기지를 매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모기지 취급과 자금 공급이 분리돼 있지 않았다. 고신용 대형 상업은행인 시중은행이 국내 주담대 대부분(5분의 4 이상)을 취급하고 자금 공급도 한 번에 한다. 조달 재원 역시 예금이 중심이다. 때문에 은행들은 예금을 모기지로 운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안전한 모기지는 예금을 담아두기에 가장 좋은 운용처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은행 입장에선 양질의 모기지 자산을 주금공에 매각하는 게 별 이득이 없다. 게다가, 은행이 정책 모기지 취급 후 매각해 얻는 이익이 은행 자체 상품 취급 후 보유할 때와 비교해 너무 적다. 이런 이유로 은행들은 마진이 더 높은 자체 고정금리 상품인 혼합형 금리(5년 고정금리 후 변동금리로 바뀌는 장기대출)를 중심으로 대응해왔다.
금융당국은 장기고정금리 대출의 대중화를 위해, 현재의 방식 외에 은행에 더 많은 가치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은행이 장기고정금리를 자체 보유하면서 중장기 채권을 발행해 자체 유동화를 하는 경우에 대해 더 큰 장점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 대표적 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이런 장기고정금리는 예대율 규제상 대출에서 빼줘야 한다. 대출금리 결정권 역시 은행이 가질 필요가 있다. 대출에 매칭해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금리변동 및 조기상환 위험에 대해서도 위험 완화를 위한 새로운 유동화 기법을 제시해야 한다. 한편, 주금공이 금리를 결정하는 저리 정책 모기지 시장은 저소득자 등 취약계층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팔 비틀기’가 아닌 시장원리를 존중해야 한다. 이래야 한은 총재가 매번 강조하는 변동금리대출 비중 축소가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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