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서로 포괄일죄 아닌 ‘실체적 경합’ 관계에 있다” 첫 판시
”‘공소장 변경→혐의 추가’ 아닌 ‘추가 기소→별도 재판’ 진행해야”
‘상습범’을 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되기 전 범죄에 대해 검사가 공판 도중 ‘개정법에 따라 상습성을 마저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지만, 대법원이 불허했다.
대법원은 상습범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던 시절의 범죄는 법 개정으로 상습범 처벌이 가능해진 뒤라 해도 하나의 범죄로 묶어 봐선 안 되고, 별도로 종전에 있던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상습 성착취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기소된 A(37) 씨에 재판 중 변경된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상습적으로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에게 신체 사진을 찍도록 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최초 기소 당시 공소장에 A 씨의 범행 기간을 2020년 11월 3일~2021년 2월 10일로 피해자는 3명, A 씨가 만든 성착취물을 19건으로 적시했다.
이후 검찰은 2심이 시작되자 추가 혐의가 발견됐다며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범행 기간을 5년 전인 2015년 2월 28일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바꾸고, 피해자를 121명으로 늘렸다. 성착취물은 총 1910건으로 대폭 불어났다.
2심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을 받아들인 뒤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 법률은 2020년 6월 2일 개정(공포일부터 시행)으로 ‘상습 성착취물 제작죄’를 추가했는데, 검찰이 2심에서 법 개정 이전에 벌어진 범행까지 상습 성착취물 제작죄에 포함시켜 법 적용에 오류가 있다고 대법원은 꼬집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의 경우 2020년 6월 2일 이전의 범행은 ‘상습’이 아니라 원래 있던 조항인 ‘성착취물 제작죄’로만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상습 성착취물 제작죄로 처벌되는 2020년 6월 이후의 범죄와 성착취물 제작죄가 적용되는 6월 이전의 범죄는 포괄일죄(여러 개의 범죄 행위가 하나의 범죄를 구성)가 아니라 실체적 경합 관계(별개의 범죄 행위로 간주)라는 해석을 처음 내놨다.
대법원은 “이미 기소된 상습범과 실체적 경합 관계에 있는 개별 범죄행위(상습범 처벌규정 신설 이전의 행위)를 상습범에 대한 공소사실로 추가하는 검사의 공소장 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에서 공소장 변경에 의해 추가된 범행은 이번 재판에서 판단할 수 없다”며 “검사가 추가 기소하면 그 사건에서 별개 재판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