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경제 희망키워드 ①규제혁파] 글로벌 흐름 뒤처진 규제…혁신기술 선점 '하나마나'

입력 2023-0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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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탄소중립 중심 재편 불구
법근거 없어 신기술 상용화 지연

불황에 투자의욕 꺽인 국내기업
10곳 중 9곳 "올해도 긴축경영"

#.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공장을 신설하려던 A사는 대기총량제 규제 때문에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대기관리권역법에 따라 공장 신설 시에는 대기배출 허용 총량을 할당받아야 하는데 해당 지역에 대기배출 허용 총량 여유분이 없어 공장을 신설하는 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A사는 “탄소중립 이행 시설의 경우 신·증설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 현대자동차는 세계 최초로 대형 수소전기트럭을 개발하고 양산했다. 2020년부터 세계 주요 시장에 수출했지만, 정작 국내에는 출시 2년이 지난 지난해 10월에서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친환경차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상용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LG전자 역시 전자식 방역 마스크를 개발했으나, 국내에는 관련 안전기준 자체가 없어 판매하지 못했다. 23개국에 출시되며 큰 관심을 받았지만, 국내에선 개발 2년 만에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규제가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도 규제에 가로막혀 국내 시장에 선보이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한국 경제에 칼바람이 불어닥치며 기업들이 몸을 잔뜩 웅크리기 시작한 가운데 규제는 기업들의 혁신 시도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 90%는 올해 현상 유지나 긴축 경영을 이어가며 사업을 확장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 침체 장기화를 막기 위해서는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고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단체들은 전 세계 경제 질서가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환경 관련 규제를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게 생분해성 플라스틱 관련 규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자연에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는 플라스틱으로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을 대체할 소재로 꼽힌다. 하지만 환경부가 지난해 1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환경표지 인증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2025년부터는 일반 일회용품과 동일하게 무상제공 금지 등의 규제를 적용받게 됐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공장의 신설을 위해 수백억 원의 투자 계획을 세웠던 화학회사 B사는 규제 개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B사 관계자는 “일회용품을 아예 못 쓰게 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썩는 소재를 사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만약 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투자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들은 식품 재검사 요건 완화 등 식품 관련 규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시험검사 기관의 잘못으로 식품에 대한 부적합 판정이 나와도 재검사 제외 항목은 재검사할 수 없다. 시험검사 기관의 오류가 의심되더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회수 조치 등의 처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식품업체 C사는 제조·판매한 식품이 시험검사 기관으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아 판매를 중단해야만 했다. C사는 해당 식품의 제품 샘플을 다른 4개 기관에 시험 분석을 의뢰했는데, 그 결과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C사는 검사 오류 가능성을 주장하며 식약처에 재검사를 요청했지만, 근거 법령이 없어 재검사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규제 완화 외에 경제단체가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 꼽는 건 법인세 인하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23일 법인세 최고세율을 과세표준 전 구간에 걸쳐 1%포인트(p)씩 인하하는 세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경제계는 아쉽다는 반응이다. 법인세 인하는 환영하지만, 최고세율 인하 폭이 충분하지 않아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인하된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세율(21.2%)보다 여전히 2.8%p 더 높다.

법인세의 복잡한 세제 체계도 개선 과제로 지목됐다. 한국의 법인세는 4단계 누진세율 구조다. OECD 회원국 중 4단계 이상 누진세율 체계로 법인세제를 운용하는 국가는 한국과 코스타리카뿐이다. 미국을 비롯한 24개국은 단일세율 체계를 채택하고 있고, 호주 등 11개국이 2단계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실장은 “현재 기업들의 자금 상황을 봤을 때 법인세 인하 폭이 경제계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고금리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법인세 추가 인하는 어렵더라도 투자세액 공제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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