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쓰지도 않은 전기요금을 내라고

입력 2022-12-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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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국회에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한국전력의 채권을 추가로 발행하는 한전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299인 중 재석 203인, 찬성 89인, 반대 61인, 기권 53인으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은 달성했으나,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을 이루지 못해 통과가 무산됐다.

한전채 발행 한도를 5배로 늘리는 내용의 한전법, 여야 의원이 발의한 내용을 통합해 상정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통과할 것이란 예상이 뒤집어진 것이다. 이런 국회의 결정은 비판을 받았다. 올해 약 30조 원의 적자로 자금 경색을 겪고 있는 한전이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전기를 사 올 수 없고 그러면 국민에게 전기를 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여야는 다음날인 9일 진화에 나서며 올해 다시 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한전채 발행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돈을 빌려 잠시 상황을 모면하는 미봉책이다. 전기요금 인상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붙어오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싼 편’이란 말이다.

최근 한전이 발간한 ‘2022년 상반기 KEPCO in Brief’엔 지난해 4분기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놓은 국가별 전기요금 현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1㎿당 105달러다. 일본과 영국은 각각 258달러, 279달러로 한국의 두 배가 넘었다. 미국은 140달러였다. 산업용 전기의 경우 한국은 95달러로 일본 162달러, 영국 202달러에 비해 매우 싼 편이다. 다만 미국은 한국보다 저렴한 74달러였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한전은 비싸게 연료를 사와 연료비보다 싼 가격에 전기를 팔았다. 수익이 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팔수록 손해 나는 구조다. 당연히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시 한 한전 관계자의 “전기를 적게 써달라”는 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사용자 입장에선 ‘한전이 연료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아 적자가 나든 말든,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고 그냥 싸게 쓰면 장땡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한전은 2조 798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으로 6680억 원을 지원했다. 올해 한전의 적자는 30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선 최후의 방법으로 한전에 정부 재정투입 가능성도 거론한다. 세금 투입은 소수의 전기 다소비 이용자를 위해 다수의 전기 소소비 이용자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료비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 즉, 지금처럼 연료비보다 낮은 가격으로 전기를 이용한 A와 B가 있다. 전기를 적게 쓰는 A는 20원 이득을 봤고 이는 한전에 20원 적자로 이어졌다. 전기를 많이 쓰는 B는 80원 이득을 봤고 이 역시 한전에 80원 적자로 이어졌다. 100원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면 세금을 같이 낸 A와 B 중 누가 손해고 누가 이득일까. A가 쓰지도 않은 B의 전기요금을 내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쓴 사람이 쓴 만큼 내는 것은 시장경제의 이치다. 시장경제를 논하지 않아도 삼척동자도 알만한 당연한 내용이다. 쓰지도 않은 전기요금을 내기 싫다. ‘적게 쓰면 나만 손해잖아, 차라리 펑펑 쓰자’란 생각을 할까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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