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성공육아 비법은 ‘유모차 자전거’

입력 2022-10-05 05:00 수정 2022-10-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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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발자국을 늘려라] 오후 3~4시 퇴근 일상...부모 평등한 보육분담

-덴마크, 8월 2일 법 개정...부모 각각 3개월 반드시 육아휴직 사용
-‘적은 부담’, ‘높은 수준’ 특징으로 하는 보육시설
-부모 전폭적인 신뢰가 일과 육아 병행 배경

#8월 말의 이른 아침,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거리는 자전거 물결로 장관을 이뤘다. 편안한 일상복 차림은 물론 정장을 빼입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들 자전거 부대는 손으로 좌·우회전 깜빡이 신호를 보내며 능수능란하게 교통흐름을 주도했다. 그 가운데 외관이 특이한 자전거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유모차가 달린 세 발 자전거다. 적게는 2살, 많게는 5살 아이를 태운 자전거 유모차는 유치원 셔틀버스가 정차한 골목에 멈춰 섰다. 부모들은 사랑의 하트를 날리며 아이를 배웅했고, 빈 자전거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한 남성이 아이를 유모차 자전거에 태우고 달리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한 남성이 아이를 유모차 자전거에 태우고 달리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코펜하겐 뉘하운의 한 카페에서 만난 '우리 아이,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The Danish Way of Parenting)'의 작가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는 “덴마크 높은 출산율의 비밀 중 하나가 바로 저 자전거 유모차에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유모차는 ‘남성과 여성의 육아 분담’, ‘4시 퇴근이 보장된 삶’, ‘양질의 보육시설’을 동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함께하는 가정’, ‘일과 삶의 조화’, ‘높은 출산율’이란 선물을 덴마크에 가져다줬다.

▲앤디가 5살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려고 자전거 유모차를 타고 왔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앤디가 5살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려고 자전거 유모차를 타고 왔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5살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러 나온 앤디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내와 분담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요즘엔 내가 오전 등원을 맡고 있다”고 했다. 13개월 아이 아빠인 앤더슨도 “육아는 같이하는 것”이라며 아빠의 육아 분담이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반응이었다. 대학생인 아내 길레는 “졸업을 하면 당연히 취직할 건데 걱정이 전혀 없다”며 “정부가 80%가량 지원해주고 육아 시스템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미소 지었다.

▲앤더슨과 길레가 13개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코펜하겐 거리를 지나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앤더슨과 길레가 13개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코펜하겐 거리를 지나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덴마크는 법을 개정해 올 8월 2일부터 부모가 각각 24주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했다. 11주는 반드시 본인이 써야 한다. 엄마와 아빠가 3개월씩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덴마크 고용부는 법 개정 취지를 묻는 질문에 “맞벌이 부부의 소득을 보장하고 육아 책임을 분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치원은 최고의 배움터이자 놀이터...“집보다 좋아요”

▲디레헤이븐(Dyrehavens) 자연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채소를 뽑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디레헤이븐(Dyrehavens) 자연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채소를 뽑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부모와 한나절 떨어져 있는 아이들은 ‘최고의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차량으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디레헤이븐(Dyrehavens) 자연유치원. 아이들은 아침부터 텃밭에서 채소를 뽑고 있었다. 이날의 테마는 ‘수확의 계절’로, 우크라이나 수프를 만들 예정이었다. 미켈 크레버그 원장은 자연스럽게 배우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체험을 강조했다. 모든 게 신기할 아이들에게 유치원은 집보다 좋은 배움터이자 놀이터였다. “엄마가 보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4살 동갑내기 벨라와 조세핀은 “아니요, 여기가 더 재미있어요.”라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아이들이 뒷산으로 산딸기 따기 체험을 하러 가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아이들이 뒷산으로 산딸기 따기 체험을 하러 가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일주일에 하루, 숲속 탐험도 떠난다. 이튿날은 산딸기를 따러 가는 날이었다. 오전 9시 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플라스틱 들통을 들고 유치원 뒷산으로 향했다. 15분가량 걸어 숲속 입구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하나둘 뛰기 시작했다. 몇몇은 다소 가파른 언덕도 재주껏 잘 기어올랐다.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내민 손을 잡고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털고 일어났다.

▲아이들이 숲속 길에서 달려 가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아이들이 숲속 길에서 달려 가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자연에서 마냥 신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부모들이 마음 놓고 일할 만했다. 숲속 체험을 이끄는 교사 메스는 “부모들이 편히 일할 수 있도록 모든 게 짜여 있다”며 “유치원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딸기 체험을 나간 아이들이 언덕을 오르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산딸기 체험을 나간 아이들이 언덕을 오르고 있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덴마크 보육 시스템의 자부심은 오랜 역사에서 비롯된다. 1960년대부터 보육 시스템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했고, 양육 관련 ‘총체적 접근(holistic approach)’을 시도했다. 1970년대 ‘워킹맘’을 위한 전일 보육시설 제공을 정부 의무로 규정했다. 현실에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가족 친화(family-friendly)’ 정책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그만큼 남다르다.

코펜하겐대학 고용관계연구센터(FAOS)의 트리네 페르닐레 라센 부교수는 덴마크 보육시설의 강점으로 ‘적은 부담(affordable)’과 ‘높은 수준(high quality)’을 꼽았다. 정부는 비용의 75%를 지원한다. 저소득·한부모·다자녀에 따라 차등이 있지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은 동일하다. 보육시설 자체도 충분하고 숙련된 교사 1명당 0~3세 3명, 3~5세 6명을 보살핀다. 부모들은 이런 돌봄 시스템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오후 3~4시, 부모 손잡고 다시 집으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오후 4시쯤이 되면 유모차 자전거들이 또다시 거리를 누빈다. 덴마크는 ‘주 37시간’ 근무제로 3시 반~4시 퇴근이 일상이다. 야근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로 아이를 제때 데려오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찌감치 유치원 하원 장소에 도착한 부모들은 숲속에서 뛰어노느라 얼굴에 흙이 잔뜩 묻은 아이들을 보며 웃는다.

▲아빠 라즈가 5살 아들을 데리러 왔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아빠 라즈가 5살 아들을 데리러 왔다. 코펜하겐=김서영 기자 (이투데이)

5살 아이 아빠 라즈는 4시 퇴근해 아이 마중을 오는 것에 대해 “어린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정부가 보장해줘야 하는 우리의 ‘특권’”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4살 아들을 마중 나오려고 3시 30분에 퇴근한 시드셀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데 눈치를 왜 보느냐”며 “경력도 문제될 게 없다”고 자신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부모, 재미있게 뛰어 논 자녀는 다시 오지 않을 추억을 쌓으러 함께 집으로 향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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