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들어서서 중도에 나가지 않는다면 통상 실·국장직까지는 올라갈 수 있고 공직생활 30년 안에 퇴직한다. 퇴직하면 앞의 A 씨처럼 50대 후반에 불과하다. 공직자윤리법 때문에 민간기업에 취업하기도 어려워 3년은 쉰다. 그가 공직생활을 통해 가진 소중한 경험과 지식 등이 재활용되지 않고 썩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은 2~3년간 해외연수도 보내주는데 공무원 1인당 1억 원 이상의 세금이 들어간다. 사실 공무원 월급은 세금에서 나가기 때문에 세금으로 키운 셈이기도 하다. 민간기업에서는 연봉을 줄이면서 정년을 연장하는 임금피크제가 있지만, 공직에서는 그냥 나가야 한다. 물론 일부 퇴직자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책을 내지만 이는 예외적인 일일 뿐이다.
최근 한 정부부처의 고위공무원 B 씨는 퇴직 후 해외여행 등 3년을 쉰 끝에 국내 굴지의 로펌에 재취업했다. 연봉이 10억 원에 달해 관가에서 화제가 됐다. 공직의 경험을 살려 민간기업에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공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었을까. 3년간 취업제한을 하는 것보다 공직 판 임금피크제를 만들어서 3년간 마지막으로 공직에 봉사하도록 하는 대안은 없을까.
인사혁신처의 공무원 인사제도를 보면 퇴직 후 퇴직공무원 사회공헌사업, 사회참여 활동 지원사업(G-시니어, 상록봉사단, 연금아카데미, 퇴직공무원 지원센터) 등이 이미 있다고 하지만 필자와 친한 고위공무원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칼럼을 쓰려고 찾아본 것이다. 고위공무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82억 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를 아는 공무원들도 깜짝 놀란 액수였다. 한 고위공무원은 한 총리가 무엇을 했기에 그렇게 재산을 모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경제부총리 퇴임 후 "매우 많은 연봉과 대우를 제시받았다. 아마 제가 받던 장관급 보수보다 뭐 10배, 20배 정도 되는 보수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로펌 등에서 고위공무원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실 로비스트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과연 한 총리와 위에서 언급한 B 씨가 고위공무원이 퇴직 후 성공한 모습이어야 할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퇴직 고위공무원의 취업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경력을 살릴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