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거절하는데, 찍으면 범죄입니다

입력 2022-09-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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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국민학교를 다닌 나에게는 불편한 기억이 있다.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의 치마를 들추며 "아이스케키"라고 외치며 도망가는 행동. 당한 여자애가 울면 "장난이야. 걔가 너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이상한 말을 했던 어른들. 그때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한 성추행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는 아이스케키를 아이스크림으로만 알고 있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스토킹을 당하던 여성이 또 살해됐다. 피해자는 피의자 전주환으로부터 "만나달라"는 연락을 350여 차례나 받는 등 지속적인 스토킹에 시달렸다. 피해자는 혼자 외롭게 법정 싸움을 벌였지만 자신의 일터인 서울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에서 숨졌다.

시민들은 남녀를 떠나 사회가 제대로 스토킹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분에 공분했다.

남성 지인은 헤어진 여자친구가 집 앞으로 찾아와 퇴근 후 집에서 맘 편히 불을 켜지 못했다. 지인들에게 연락하거나 집 앞에서 기다리는 등 전 여친의 스토킹은 이후 몇 년 동안 지속됐고 결국 이사를 가고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고 한다. 당시를 회상하면 매일이 불안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일부 교사들은 학부모 지나친 연락에 시달리기도 한다. 학생 관리 차원에서 전화번호를 공개한 것인데 퇴근 후 자녀 상담을 요구하거나 소개팅을 종용하는 등 사생활까지 간섭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검찰에 접수된 스토킹 사건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월평균 136건, 2022년 1분기엔 486건, 2분기엔 649건이 접수됐다. 긴급응급조치는 총 2725건, 잠정조치는 총 4638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스토킹은 이성 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고 사건 접수도 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의 정치권과 공공기관의 대응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피해자가 몸담았던 서울교통공사는 직원들에게는 재발방지 아이디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가 주먹구구식 대응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여성 노동자를 관련 업무에서 배제하겠다는 대책을 내놔 남녀차별을 조장한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사건 열흘 만에 공식 사과해 '늑장 사과'로 또다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권은 “피해자가 충분한 상담을 받았다면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건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듯한 황당한 발언을 했다. 이상훈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은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 같다”라는 망언을 했다.

시민들은 더이상 유사한 범죄가 없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공공기관의 낡은 인식과 감수성으로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토킹은 구애가 아니다. 사회 전박적으로 스토킹을 범죄로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의 적극적인 구애활동으로 보는 안일한 인식이 곧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 거절을 했는데도 도끼로 찍으면 '스토킹'이다. 도구를 이용해 쓰러트리는 일을 낭만적이라고 포장하는 사회적 통념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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