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대금 적정 조정 특별약정서 도입
26일까지 참여기업 모집 내달 본격 시행
6개월 모니터링 제도 개선점 반영
중소기업 협상력 떨어져 제도 실효성 의문
정부가 11일 발표한 ‘납품단가 연동제 시범운영 방안’은 14년 동안 공회전 한 제도의 얼개를 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번 협의가 기업간 ‘협의’와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어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논의 테이블에서 얼마나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날 ‘납품단가 연동제 TF 회의’를 연 뒤 브리핑을 열고 ‘납품대금 연동제 시범운영 방안’을 발표했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위탁기업이 하도급 계약기간 중 원부자재 가격이 변동되면 이를 반영해 원사업자가 납품단가를 인상해주는 제도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불공정하도급 관행 개선 방안 중 하나로 논의가 본격화된지 14년만의 시범운영이다.
올해 납품단가 연동제는 민생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소기업들이 존폐 기로에 놓인 현실을 호소했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새 정부의 기조가 더해지면서 시범사업 도입이 속도를 냈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중소기업의 납품대금이 적정하게 조정될 수 있게 특별약정서를 도입한 점이다. 특별약정서는 목적과 정의, 효력 등에 대해 규정하는 본문과 납품대금 연동에 필요한 사항을 기업이 기재하는 별첨으로 구성된다. 특별약정서를 활용하면 수·위탁기업이 원하는 납품대금 연동제를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중기부는 보고 있다. 약정서 기재사항은 물품명을 비롯해 △주요 원재료 △가격 기준지표 △조정요건 △조정주기 △납품대금 연동 산식 등이다.
예를 들어 동(銅) 케이블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이 동을 원재료로 많이 사용하는 경우 기업간 협의로 런던금속거래소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지표를 지정한 뒤 '매월 1일'을 조정일로 지정하고, 조정요건은 '±3% 변동시' 등으로 설정하는 방식이다. 또 ‘톤당 동 가격 변동금액에 동의 중량을 곱한 값으로 납품대금 조정금액을 산출한다’ 등의 방식으로 연동 산식을 협의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시범운영에서 ‘대기업 등의 자율적인 참여’를 위해 오는 26일까지 참여기업을 모집한다. 참여가 저조할 수 있다는 일각에 우려에 대한 이날 이 장관은 관심을 보이는 중견, 대기업들이 많은 만큼 20~30개 기업을 충분히 모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정부가 납품단가 연동제를 법적으로 제도화 하기 전에 시범사업부터 서두른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협의를 끌어내기 위한 의도가 크다. 14년동안 진척이 없었던 제도 도입을 법으로 강제화 할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기환 중기부 상생협력정책관은 “이번 시범운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의 ‘툴’을 처음으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크다”며 “이번 시범운영을 준비해온 과정 자체가 하나의 상생이었다”고 평가했다.
중기부는 앞으로 시범사업 6개월 동안 모니터링 한 뒤 제도를 개선 및 반영할 계획이다. 법제화 이후에도 시범운영을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한 문화로서 연동제가 정착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중소기업계는 환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여야가 납품단가 연동제 조기 입법을 합의한 상황에서 주무부처가 입법에 발맞춰 시범실시를 추진하는 것은 제도의 효과적 도입과 안정적 정착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시범운영이 기업간 ‘협의’와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어 실효성을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별약정서에서 원재료, 조정주기, 조정 요건 등의 항목을 기업이 협의해 설정해야 하는데 협상 과정에서 진통이 적지 않을 수 있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교섭력이 떨어져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기가 어려워 사실상 허울뿐인 제도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