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통화긴축, 우크라이나 전쟁 몰아친 여파
연준 긴축 행보에 미국 국채로 전환 투자자 더 늘 듯
JP모건체이스 분석 결과 올해 신흥시장 채권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 규모는 500억 달러(약 65조 원)에 달했다. JP모건이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소 17년 만에 가장 큰 자금이 유출된 것이며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5년 기록한 이전 역대 최대치를 넘어섰다고 FT는 설명했다.
세계 경제에 각종 악재가 몰아치면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신흥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투자은행 윌리엄블레어의 마르코 루이저 신흥시장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글로벌 자본의 신흥시장 유출에 대해 “엄청난 수준”이라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중앙은행 긴축,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합해 신흥시장을 뒤흔들었다”고 말했다.
자금이 신흥시장에서 빠르게 이탈하면서 국채 가격도 급락했다. JP모건의 달러 표시 신흥시장 국채 지수는 올해 18.6% 하락해 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 중이다.
신흥시장 채권 가격은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6월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에 이어 이달에도 공격적 긴축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수익률이 오른 미국 국채로 갈아타는 투자자들이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루이저 매니저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전에도 신흥시장 채권 상황은 좋지 않았다”며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서 경기침체 불안감이 커졌고 신흥시장 채권의 추가 투매를 부채질했다”고 진단했다.
일부 원자재 수출국들은 우크라이나 전쟁발(發) 가격 상승으로 이익이 늘기도 했다. 루이저 매니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충격은 일부 원자재 수출국들에 호재가 된다”며 “신흥국 중 상당수가 원자재 수출국이기 때문에 뜻밖의 횡재를 얻는 국가도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이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면서 원자재 급등 수혜를 봤던 신흥국 통화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또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통상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에 통화가 약세인 신흥국들은 비용 압박이 더 가중됐다. 에너지 수입 비중이 큰 튀르키예(터키)는 6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78.62% 급등하며 24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모든 부문에서 물가가 무섭게 뛴 가운데 식품은 93.9%, 운송은 무려 123.4%의 상승률을 보였다.
크리스티안 마조 TD증권 신흥시장 전략 대표는 “채권시장은 경기 사이클과 상관관계를 보인다”며 “투자자들은 성장 전망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신흥시장에서 서둘러 발을 빼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