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2위 가상자산(암호화폐) 이더리움이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업데이트가 이르면 다음 달, 늦어도 연말까지 이뤄질 전망이다. 이번 업데이트에 코인 업계는 물론 반도체 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네트워크 유지 방식이 하드웨어 방식에서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그동안 쓰였던 그래픽카드와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반도체(D램), 메인보드(MB) 등의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이 현재 채굴 방식은 비트코인과 같이 특정 계산을 빨리한 참여자가 새로운 보상을 갖게 되는 작업증명 방식이다. 다만 전용 CPU에 최적화된 비트코인과 다르게 이더리움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개인용컴퓨터의 그래픽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이에 이더리움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2017년 중순부터 그래픽카드의 수요는 매우 증가했고, 이는 가격은 묻지도 않고 물량을 확보하는 전쟁의 시발점이었다.
이더리움 채굴자 수(노드)는 꾸준히 증가해 1만 개에 가깝게 증가하면서, 한때 비트코인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1700여 개 수준으로 감소 중이다. 채굴자 기기 수도 2018년부터 2019년 말까지 이어진 약세장 속에서 다소 줄었다.
그런데 지난해 이더리움 재단은 언론 매체와 각국 정부, 학계, 연구기관 등이 가상자산 채굴의 에너지 소비가 한 국가의 에너지사용량보다도 많다는 연구 결과 발표 이후 비판을 받으면서 계획보다 빠르게 채굴방식을 바꾸겠다고 결정했다. 아무리 늦어도 올해 연말까지 업데이트를 끝내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더리움의 업데이트 소식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곳은 채굴업계가 아닌 반도체업계다. 바로 엔비디아다.
엔비디아의 대표적인 보급형 그래픽카드는 ‘RTX3060’이다. 모델번호 XX60은 그래픽카드 품귀현상 이전에 30만 원 전후에서 거래됐다. 수급이 원활한 상황이었다면 30만 원대 살 수 있었던 제품이 지난해 8월 이더리움의 가격이 치솟을 때 90만 원(이엠텍 12GB 기준)도 호가했다. 비싼 값은 둘째치고 구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더리움이 올해 8~12월 사이 지분증명(POS) 전환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수요는 급감했고, 현재 고점 대비 절반 수준인 49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더리움 채굴의 손익분기점은 평균적으로 1~2년 사이로 보고 있다. 지금 기기를 사 채굴을 시작하면 최대 6개월밖에 할 수 없어, 사실상 수익을 내기 불가능하다. 게다가 올 초부터 약세로 돌아선 코인 가격도 채굴 수요를 짓눌렀다.
이더리움 채굴로 인한 수요 감소로 엔비디아의 실적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1분기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지만 2분기 매출이 81억 달러로 저조할 것으로 예상한다. 채굴로 발생했던 비정상적인 수요의 거품이 꺼진 셈이다.
채굴 수혜기업은 보통 엔비디아와 AMD 등 그래픽칩 제조사들이 꼽힌다. 그러나 숨은 수혜자는 삼성전자다. 채굴기를 제작하기 위해선 컴퓨터와 같은 부품이 필요하다. 이 중 고성능 메모리는 필수로 꼽힌다.
삼성전자의 메모리는 채굴자들 사이에선 ‘갓삼성’(삼성전자 메모리를 신에 비유)으로 통한다. 성능 안정성 면에서 탁월해서다. 실제로 삼성전자 메모리를 오버클록(강제 성능향상) 했을 때 안정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정성이 높다는 건 그만큼 더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이더리움 채굴 인기 하락이 메모리 수요의 감소를 불러왔고, 가격 하락으로 나타났다. 대만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D램 평균 계약가가 전년 동기 대비 10.6%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 때 폭등한 메모리 반도체 D램 가격이 2년 만에 처음이다.
미국의 반도체업체 마이크론도 최근 전문가들의 예상에 못 미치는 매출 전망치를 제시하며 생산 능력 확충 계획을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