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영화냐” 디스가 힌트 됐다… 만능재주꾼 윤성호 감독의 특별한 날

입력 2022-06-27 13:55 수정 2022-06-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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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감독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윤성호 감독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이게 영화냐, 시트콤이지.

2007년 연출한 영화 ‘은하해방전선’을 두고 독자가 인터넷 사이트에 달았던 디스 한줄평에 윤성호 감독은 의외로 무릎을 탁 쳤다고 한다. “아 맞다! 내가 왜 시트콤을 만들어볼 생각을 안 했지!”

한 편의 ‘잘빠진’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이 표출한 불만족의 글은 그에게 앞으로 어떤 작품을 찍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힌트가 됐다. ‘거침없이 하이킥’, ‘앨리 맥빌’,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같은 국내외 시트콤을 보며 킥킥대길 좋아했던 그는 이후 “많은 사람이 웹드라마의 시초라고 쳐주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2)'를 만들었다. 이어, 유튜브에서 ‘탑 매니지먼트(2018)'를, 웨이브에서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를 선보이며 시청자를 만족시키고 있다.

이쯤 돼서 짚어볼 법한 또 다른 한줄평. ‘은하해방전선’ 당시 이동진 평론가가 남긴 “영화제 울타리 밖에서의 생존력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문장도 빼놓을 수 없다.

25일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인터뷰룸에서 만난 윤성호 감독은 다시 생각해봐도 지난 평가들은 “너무 맞는 말”이었다며 웃었다. 관객이든 평론가든 “팩트체크 없이 부당한 비판을 할 땐 기스가 나지만, 저 사람의 근거가 일리가 있고 타당하면 오히려 솔깃한 때가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20여 년간 크고 작은 창작 활동을 이어온 창작자의 ‘맷집’이 감지됐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포스터 (wavve)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포스터 (wavve)

윤 감독은 때로는 먹는 드라마(‘출출한 여자’)로, 때로는 레즈비언물(‘대세는 백합’)로 캐릭터와 소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20여 년간 무려 38편의 길고 짧은 작품을 내놓았다. 대개 시트콤 성격을 띤 코믹 드라마들이다. 영화보다 짧은 상영 시간 안에 명료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와 치고 빠지는 코미디 등을 무기로 삼아 현재의 입지를 닦았다. 그는 지난 모든 작품에 “적당히 자기 자리에서 운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작은 아이러니를 그려온 경향이 있다”고도 정리했다.

2021년 공개된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올해 5월 백상예술대상 후보에 올라 ‘오징어 게임’, ‘D.P.’ 등 넷플릭스 작품과 경쟁할 만큼 평가받았다.

23일 개막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그에게 의미 있는 행사다. 특별전 ‘클로즈업: 두근두근: 윤성호’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7분짜리 작품 ‘우익청년 윤성호(2004)'부터 2017년 공개한 70분짜리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영화제는 “고고학자처럼” 그의 작품을 망라했다.

▲25일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윤성호 감독 (평창국제평화영화제)
▲25일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윤성호 감독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윤 감독은 지난 작품을 돌이키며 “서브컬쳐 장르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시장이 있다”고 했다. 정치코미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페이스북 같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정치적 발화를 좋아하는 30~40대가 주목해줬”고, 서은수, 차은우 주연의 아이돌 드라마 ‘탑 매니지먼트’는 “해외에서 엄청 많이 봐줬다”는 식이다. ‘대세는 백합’으로 레즈비언물을 선호하는 팬층에게 ‘백합 깎는 노인’이라는 애칭을 얻은 것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어떤 콘텐츠가 어디에서 파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현재 OTT 시리즈물을 기획 중이다. 그는 “갑자기 100억, 200억짜리 작품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내가 원하는 사람을 캐스팅하고, 내가 넣고 싶은 농담을 넣을 수 있는 ‘권한’을 키워가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직후 곧장 원격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던 그는 배우 윤여정이 했던 “배우에게 진짜 어워드란 다음 프로젝트를 받는 것”이라는 말을 다음처럼 되읊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성공의 척도는 다음 할 일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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