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후 대표단 단장인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기자들에게 “과제를 공유하고 협력을 긴밀히 유지,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 징용공, 전 한반도 출신 노동자 소송 문제 등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전환기를 만들기 위해 성의 있게 대화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대표단이 하야시 외상 등과의 면담을 통해 한국 측이 한일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판단해 면회할 생각을 정했다고 한다. 따라서 기시다 총리와 대표단의 면담이 정해진 것은 면담 직전이었다. 지난달 26일 윤석열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받은 기시다 총리는 긴박해진 국제정세를 염두에 두면서 “한일 관계 개선은 미룰 수 없다”고 말했고, 윤석열 정권과 의사소통을 강화할 생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러나 양국 간 이견을 좁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강제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서 개선책이 양쪽에서 제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민당 내 일부는 기시다 총리와 한국 대표단의 면담을 반대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 반발이 있다. 윤석열 정권은 국회에서 여소야대 상황이어서 일본에서도 윤 정권의 정부 운영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면담 후 회견에서 “나라와 나라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관계의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즉 한국이 나라와 나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일본 측 자세에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달 하순 먼저 한국을 방문하고 그다음 일본을 방문하기로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은 보통 일본을 먼저 가고 한국에 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순서가 바뀌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단,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방일의 목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미중 대립 격화를 염두에 둔 한미일 공조 강화에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정세의 안정을 위해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미국이 한일 간의 긴밀한 협력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일 관계 개선의 방향이 과연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에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큰 외교무대에 나가게 되는데 한국의 국익을 확대화할 수 있는지 주목된다.
한국 대표단은 기시다 총리를 만난 뒤 총리 관저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지 않고 곧바로 출구로 향했다. 일본 측이 대표단에 취재에 응하지 않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뿐만이 아니라 하야시 외상, 하기우다 경제산업상, 기시 방위상 등과의 면담의 모습은 미디어에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일본 측이 한국 대표단과의 만남이나 발언을 기본적으로 비공개로 한 것이다.
그 대신 정진석 단장은 4월 28일 도쿄에 있는 한국 특파원들에게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 소송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뜻을 일본 측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기본 정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일본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단은 아베 신조 전 총리와도 30분 정도 면회했다고 전해진다. 아베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근황을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베 전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일 합의가 파기된 것은 유감”이라며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고 한다.
정진석 단장은 4월 28일 인천공항에 귀국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와 기대를 일본 측에 전달해 공감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외교당국 간 대화를 활발히 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대표단의 일본 방문에서 눈에 띄게 얻은 성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일단 양국에서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분위기는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 산적해 있는 한일 간의 난제를 실제로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필자가 볼 때는 한일 간 인적 교류가 먼저 시작되고 분위기를 개선하면서 현안의 개선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국 측은 한국을 쿼드에 참여시키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이 쿼드 참여 문제가 윤석열 차기 대통령의 외교에서의 자세를 가를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있어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