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단위로 예약을 받아 운영 중인 소규모 사진전 ‘아가씨의 순간들’을 기획한 플레인아카이브 임유청 팀장은 봄꽃이 만발한 서촌이라는 공간적 특성 때문에 “워크인(예약 없이 들르는) 고객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예약이 매진”이라고 했다. 그만큼 철저히 계획하고 찾아오는 팬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12일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을 직접 찍은 이재혁 스틸포토그래퍼를 만나 소감을 들었다. 그는 ‘히데코’역을 소화한 배우 김민희가 기모노를 입고 카메라를 지긋이 응시하는 사진을 특별히 손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진들은 영화 속 장면이지만 이 사진은 (스틸컷으로 남기기 위해) 따로 찍은 컷이다. 박찬욱 감독님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하셨다. 700년 넘은 나무와 기모노의 느낌이 너무 잘 어울렸다”고 했다.
사진은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산 속으로 들어간” 일본의 고사찰에서 촬영했다. 극 중 ‘히데코’와 ‘후지와라 백작(하정우)'의 결혼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스틸포토그래퍼는 통상 영화 촬영 도중의 배우들이나 현장 상황을 카메라에 담지만, 작품과 어우러지는 완벽한 분위기를 선사한 ‘기모노 입은 히데코’는 오롯이 그 자체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됐다. 박찬욱 감독도 이 사진을 이번 사진전에 “꼭 넣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특정 영화의 스틸컷만을 전시하는 사진전은 국내에서는 흔치 않다. 이재혁 스틸포토그래퍼는 “한국 영화사에서는 아마 처음 아닐까 싶다”면서 “학교 졸업전시회 이후 내 사진을 프린트해서 전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설레기도, 두렵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아가씨’, ‘설국열차’, ‘기생충’ 등 대표적인 한국 상업영화 스틸컷 촬영을 전담하면서 전시보다는 현장에 몰두해왔다. “스틸컷은 보통 영화 배급, 마케팅 과정에서 정보를 주기 위한 사진이기 때문에 담당자에게 작업본을 넘긴 뒤에 벌어지는 일부터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이번 사진전에서는 본인이 직접 전시할 사진을 고르고, 크기를 키우고, 프린트해서 액자에 넣으며 전체 과정에 함께했다.
전시 공간 창문 곳곳으로 보이는 만개한 벚꽃과 고아한 산세가 스틸컷의 훌륭한 배경이 되어주는 조화로운 풍경을 두고 그는 기획 쪽에서 “좋은 계절을 선택해줬다”고 했다.
이재혁 스틸포토그래퍼는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스틸컷을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필름 촬영 시절에는 스틸컷 한 장 한 장이 모두 비용이었지만, 디지털 촬영으로 전환된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는 컷 수를 자유롭게 조율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작품 한 편에 2만~3만여 장의 스틸컷을 찍는다. 그중 극히 일부만이 개봉 시점에 맞춰 대중에 공개되는 셈이다. “일반 관객이 볼 수 있는 스틸컷은 10~20컷 사이다. 온라인 매체가 활발해지면서 스틸컷이 좀 더 공개되고 있지만 그래도 100여 컷 정도다.” 그의 말로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영화 촬영 현장의 장면이 어두운 저장창고에 쌓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리소문없이 보관만 되어있는 스틸컷을 꺼내어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과 함께 즐길 수는 없을까. 그 고민의 결과물이 사진전 ‘아가씨의 순간들’이다.
영화 관련 서적과 블루레이를 꾸준히 제작해온 플레인아카이브는 5월 말부터 400여 점의 사진을 담은 ‘512페이지, 3kg 무게’의 ‘아가씨’ 공식 사진집을 정식 배송하는데, 예상보다 더 빠른 ‘품절’로 호응해준 영화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 위해 이번 사진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임유청 피디는 “’아가씨’의 미공개 컷 중에서 보여드리고 싶은 컷을 위주로 선별했고, ‘아가씨’하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코르셋을 입혀주는 장면’같은 컷을 일부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전 ‘아가씨의 순간들’은 17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