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이달 시중은행과 비은행권 금융회사로부터 가계대출 세부 내역을 받고 세부 통계 방안 마련을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주택담보대출 내 전세대출, 집단대출 등 유형별 구분이 없어 제대로 된 대출 현황을 파악할 수 없는 탓에 가계부채 대책이 겉핥기식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본격적인 통계 세분화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가계부채 대책의 심도가 깊어질지 주목된다.
30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은행은 금융회사로부터 주택담보대출 유형별 자료를 확보하고 통계 구축 작업에 돌입했다.
한국은행 송재창 금융통계팀장은 “전세 대출 등을 포함한 세부 통계 시험 공표를 위해 금융사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라며 “이달 들어 시중은행과 비은행권 금융사들로부터 일반주담대, 집단대출, 전세대출 등 세부 자료를 제출받고 살펴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 팀장은 “제대로 된 자료가 안정적으로 들어오는지 등을 꾸준히 확인해 나가며, 분류체계를 구축할 것”이라며 “초기 단계라 언제 공표할 수 있을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또 “임대보증금의 경우 개인 간 거래이고, 우리는 금융기관을 거친 거래를 파악하기 때문에 세부 항목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연내 주택담보대출 유형별 자료 제공을 위해 세부통계 구축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초기 단계로 구체적인 공표일정은 미정이다.
한은이 이 같은 작업에 착수한 것은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가계부채의 규모 및 위험성 전이 가능성을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가계부채의 증가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악화시켜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 규모 및 위험성 전이 가능성을 분석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가계부채의 규모를 나타내는 주요 통계인 한은의 가계신용 통계는 주담대와 기타대출 등 대출과 판매신용으로 구분하는 데 그치고 있다. 주담대에는 일반 주담대, 집단대출, 전세대출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나 세부 대출유형별 통계는 부재한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역시 가계대출 동향 보도자료를 통해 은행권의 주담대 유형별 증감액 자료를 공표하고 있으나, 제2금융권 등의 세부항목별 규모는 확인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각각의 대출은 각기 다른 수요공급 요인과 위험구조를 나타내므로 정확한 사실 파악과 분석을 위한 세분된 통계자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 가계부채 증가 시기의 원인은 매번 달랐다. 2005~2007년 가계부채 증가 시기에는 주택가격 상승을 동반한 일반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났으며 2015~2016년에는 신규분양아파트 증가에 따른 집단대출 확대가 요인이었다. 최근의 가계부채 증가는 전세자금 대출의 증가가 원인으로 꼽혔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전일 ‘가계부채 관련 통계자료 작성의 보안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고 “가계부채의 규모와 급격한 증가세가 경제 위험요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분석을 위한 통계자료 개선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각각의 대출은 다른 수요·공급 요인과 위험구조를 가지고 있어 세부 통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은이 가계부채 세부 통계를 구축하더라도 임대보증금이 통계에서 제외되는 만큼 가계부채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세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존재하지 않아 가계부채의 위험구조가 다를 가능성이 있지만, 임대보증금이 통계에서 제외되면 가계부채 규모를 실제보다 작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대보증금은 전세보증금과 준전세보증금을 합한 것으로, 현재 인구주택총조사, 국민은행 전세가격, 주거 실태조사 등을 이용해 추정하고 있다.
예산정책처 보고서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량을 정확히 추정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에 임대보증금을 포함해야 하며, 포함 시 가계부채 규모는 현재의 가계신용통계보다 큰 규모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세제도가 없는 다른 나라의 경우 금융기관의 대출자료를 바탕으로 가계부채 규모를 집계하는 것이 적절하나, 우리나라의 임대보증금도 부채이므로 이를 포함하지 않을 경우 가계부채 규모를 과소 추정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