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협정 개정부터 우선돼야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동차세 부과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실제 논의는 난항을 겪고 있다. 통상마찰 우려와 과도한 행정비용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서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는 현행 자동차세 부과체계를 가격과 탄소배출량(CO₂) 기준으로 바꾸겠다는 내용의 공약을 최근 제시했다.
이 후보는 “많은 국민이 배기량 기준의 현행 자동차세 부과체계를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라며 “가격에 비례해 자동차세를 부과하되, 소형차와 전기ㆍ수소차 세금이 지금보다 늘지 않도록 설계하겠다. 탄소배출량을 반영하는 방식은 배출량 측정 설비가 충분히 신뢰성을 갖추는 대로 시행하겠다”고 했다.
현재 비영업용 승용차의 자동차세는 배기량에 세액을 곱해 산정한다. 배기량 1000㏄ 이하는 ㏄당 80원, 1600㏄ 이하는 140원, 1600㏄ 초과는 200원을 내는 식이다. 배기량이 많을수록 세금을 더 내는 구조다.
그런데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배기량을 낮춘 ‘다운사이징 엔진’을 채택하는 고급차가 늘어나며 ‘조세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가격이 더 비싼 차의 세금이 저가모델보다 낮아지는 것이다.
예컨대 가격이 3500만 원대인 현대차 그랜저 3.3 가솔린 모델은 배기량이 3342㏄라 자동차세가 87만 원이다. 반면, 가격이 1억4000만 원인 포르쉐 파나메라는 배기량이 2894㏄인 엔진을 얹어 자동차세로 75만 원이 부과된다.
이 때문에 이재명 후보의 공약 이전에도 정치권과 소비자 단체에서는 현행 자동차세 부과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배기량 중심의 기준을 차량 가격과 탄소배출량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 탓에 자동차세 개편은 난항을 겪고 있다. 통상마찰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이유다. ‘한-미 FTA’ 협정문에는 한국이 배기량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불공정 무역 시비를 피하려면 자동차세 개편 이전에 미국과 협정을 개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배기량이 아닌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조세제도는 수입차에 대한 영향력이 클 것이라 상대국이 차별제도로 인식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탄소배출량을 과세 기준으로 도입하는 방안은 신뢰성 있는 측정 방법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차량이 내뿜는 탄소의 양은 각 차량마다, 연식에 따라서도 다르다. 결국, 모든 과세대상 차량의 배출량을 측정해야 하는 행정 부담이 발생한다.
업계 관계자는 “독일, 프랑스 등 다수의 EU 국가에서 탄소배출량을 자동차세 과세기준으로 하고 있다”라면서도 “배출량을 신뢰성 있게 측정하는 방법을 먼저 도입하는 등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