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공식화하며 내년부터 국산차 5사(현대차ㆍ기아ㆍ한국지엠ㆍ르노삼성ㆍ쌍용차)의 ‘인증 중고차’가 판매될 전망이다.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 사업 진출로 소비자 만족 개선과 브랜드 가치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23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내년 1월 중고차 시장 진입’을 선언한 완성차 업계는 사업 추진에 앞서 자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일부 제조사는 내달 중 지방자치단체에 중고차 사업 등록을 끝낼 계획이다. 중고차 사업은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만 하면 사업에 나설 수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대로 1월부터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면서도 “어떤 사전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인지는 현시점에서 밝히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국산차 5사가 매집해 판매할 중고차는 5년ㆍ10만㎞ 이하 차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완성차 업계는 물량을 독점하지 않기 위해 5년ㆍ10만㎞ 이하의 중고차만 판매하겠다는 상생안을 내놓은 바 있다.
완성차 업계는 자신들이 직접 중고차를 판매하면 소비자 만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대기업은 소비자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금력도 있어 시스템을 갖춰 혼탁한 중고차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중고차 시장은 연간 240만여 대가 거래되고 매출액이 약 12조 원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지만, 소비자의 평가는 박하기만 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1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 응답자 80.5%는 국내 중고차 시장이 허위매물, 주행거리 조작 등으로 불투명하고 혼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5월에는 허위 중고차 매물을 올린 사기 집단에 속아 비싸게 화물차를 산 6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피해 사례도 끊이질 않고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구매 경험자 70~80%가 거래 관행이나 품질, 가격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품질평가와 가격산정을 공정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역량을 갖춘 제조사가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브랜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사업을 원하는 또 다른 이유다. 제조사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야 품질을 장기간 지속해서 관리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신차 경쟁력까지 향상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완성차 제조사의 중고차 사업이 허용된 미국에서는 한국 브랜드와 외국 브랜드의 중고차 감가율에 큰 차이가 없고, 차종에 따라서는 한국 브랜드 가격이 높은 예도 있다. 중고차 감가율은 신차 가격 대비 중고차 가격의 하락 폭을 나타내는 지표다. 감가율이 높으면 그만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KAMA에 따르면 미국에서 거래되고 있는 2017년식 현대차 아반떼의 평균 감가율과 폭스바겐 제타의 감가율은 모두 34.8%로 같았고, 2017년식 현대차 쏘나타와 폭스바겐 파사트의 감가율은 각각 43.3%, 43.9%로 비슷했다.
반면, 국내에서 2017년식 제네시스 G80은 30.7% 내려간 가격에 거래되고 있지만,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는 25.5%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차 브랜드는 국산차와 달리 인증 중고차를 판매하고 있어 국산차 업계가 불리한 조건에 놓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잔존가치가 보장이 안 되니 신차도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잔존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되면 신차 브랜드 가치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 설명했다.
완성차 업계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는 생산과 판매에 그치지 않고 정비와 중고차, 폐차에 이르는 자동차의 생애 전 주기를 관리해 신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다양한 빅데이터를 축적하다 보면 제조사의 역량을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새로운 사업에 나설 수 있어서다.
기존 중고차 업계는 완성차 제조사가 시장에 진출하면 상품화 비용 때문에 중고차 가격이 올라가 소비자 이익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완성차 업계는 가격 인상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역시 소비자 선택에 맡길 일이라고 반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대기업이 인증한 중고차를 구매할 사람은 분명히 있다. 시장 경제에 맡겨야 할 일”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