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3년 만에 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됐습니다. 높은 가격 탓에 평소 구매하기 어려웠던 명품 가방이나 시계 등을 면세 핑계로 한번 구매해 보려다가도 구매 한도에 막혀 좌절했던 경험 한 번씩 있으시죠?
이번 면세점 구매 한도 폐지로 가격 제한 없이 면세품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란 기대가 높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면세품을 마음껏 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구매 한도와 별개로 면세 한도 600달러는 기존대로 유지되기 때문인데요. 면세 한도를 초과하는 구매액에 대해서는 기존대로 세금 납부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결국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한 말장난일 뿐”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 3월 내국인 면세점 구매 한도 5000달러를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해외 소비를 국내로 유도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인데요.
여기에 구매 한도에 제한을 두는 제도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제도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이 제도는 1979년에 도입됐습니다. 외화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는데요. 당시에는 구매 한도가 500달러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1985년 1000달러로, 1995년에는 2000달러까지 늘었고. 이후 2006년에 3000달러, 2019년에 5000달러까지 조정됐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구매 한도도 꾸준히 상향 조정됐죠. 하지만 외환 보유량과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구매 한도가 경제 규모에 비해 적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민총소득은 2014년 1570조 원에서 2020년 1940조 원으로 23.6% 증가했습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 역시 같은 기간 3095만 원에서 3747만 원으로 21% 상승했죠.
무엇보다 면세점 구매 한도를 두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합니다.
어찌 됐든 이번 제도 폐지로 정부는 그동안 낮은 구매 한도로 인해 고가제품을 해외에서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해외 소비를 국내로 전환함으로써 국내 소비 진작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죠.
관련 업계에서도 내국인이 국내 면세점에서 소비할 수 있는 구매액 상향선이 사라지면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면세 구매 한도 폐지만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면세한도 상향이 함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면세 구매 한도 제한 만을 없앤 것은 면세점에서 살 수 있는 제품 폭을 늘리는 정도의 효과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들만 봐도 “면세점에 면세 한도를 늘려야 매출이 늘어난다” “600달러 면세는 유지하면서, 구매 한도만 늘린다고 효과가 있겠냐” “결국 비싼 거 더 사고 세금 더 내라는 거네” “면세 600달러라니, 중국보다 더한 규제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면세 구매 한도를 폐지하면서 기대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결국 면세 한도 확대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당장 중국의 사례만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 역시 면세 산업을 키워 내수를 진작시키고, 외화 반출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면세산업에 대한 지원에 적극 나섰습니다. 중국 정부는 우리 정부와 달리 하이난을 중심으로 내국인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면세 특구를 조성하고, 면세 한도 또한 3만 위안(약 520만 원)에서 10만 위안(약 1730만 원)으로 대폭 상향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성과로 바로 이어졌습니다. 중국국영면세품그룹(CDFG)이 지난해 세계 면세점 1위에 등극한 것입니다. 1년 만에 무려 3계단을 뛰어 오른 순위인데요. 영국 면세유통 전문지 ‘무디 데이빗 리포트’가 발표한 2020년 매출 기준 세계면세점 순위에 따르면, CDFG의 지난해 매출은 66억300만 유로(약 8조8521억 원)로, 전년 60억6500만 유로(8조1978억 원) 대비 8.1%나 상승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주요 면세점 매출은 30% 넘게 떨어졌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면세 한도 상향’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1978년 10만 원으로 시작한 면세 한도는 1988년 30만 원, 1996년 400달러, 2014년 600달러까지 오른 후 7년째 제자리입니다.
이는 다른 주요 국가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일본의 경우 20만 엔(약 202만 원)에 달하며, 미국은 800달러(약 89만 원), 호주는 900호주 달러(약 76만 원), 태국은 2만 바트(약 71만 원) 수준입니다. 중국은 하이난 특구를 제외하면 5000위안(약 87 만원) 입니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면세 구매 한도 폐지가 이뤄진 것은 긍정적이다”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실질적인 ‘면세 한도’도 함께 올려주면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는 물론이고 어려움을 겪는 면세산업에도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