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적 셧다운제’가 폐지되면서 규제 족쇄를 푼 게임업계가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 관련 규제를 강화할 조짐이 보이면서 또 다른 규제 한파가 닥치는 게 아니냔 우려가 업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1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16세 미만의 청소년이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규정이 사라지게 됐다. 국회는 11일 본회의를 열고 이런 제한 규정을 삭제한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는 청소년 본인 또는 보호자가 요구할 경우 원하는 시간대에 게임 이용을 차단할 수 있는 ‘선택적 셧다운제’가 도입된다. 매출 300억 원 이상 게임업체의 경우 이 제도를 의무 도입해야 한다. 개정안에는 인터넷 게임 중독, 과몰입 피해 청소년뿐만 아니라 피해 청소년 가족에게도 상담 교육ㆍ치료, 재활서비스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2011년 처음 도입한 지 10년 만에 강제 셧다운제가 사라지게 됐다. 2000년대 초반 청소년 게임 중독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도입한 강제적 셧다운제는 도입 직후부터 국내 게임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왔다.
또한, 청소년이 부모님 개인정보를 이용하면 셧다운제를 쉽게 피해갈 수 있는 등 실효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이후 모바일 게임이 게임 시장을 주도하게 되면서부터는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 셧다운제가 PC게임에만 적용되고 모바일 게임에는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규제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다.
셧다운제가 폐지 순서를 밟게 되자 게임업계는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강제적 셧다운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게임에 ‘관리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은 규제”라며 “(제도 폐지로 인해) 향후 게임이 더욱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협회는 게임 내 자녀 보호 기능을 알리는 등 청소년 보호에 앞장서며, 제도 전환 과정에서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할 방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선택적 셧다운제 또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게임산업 중심이 PC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옮겨간 만큼 PC게임을 규제하는 것은 더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국내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이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데 PC 온라인 게임에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규제하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게임에 대한 이슈를 법으로 규제하는 발상을 버리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셧다운제가 사라졌지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할 조짐인 만큼 게임업계는 또다시 긴장하는 분위기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다음 달 1일부터 확률 정보 공개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을 시행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율규제 대상이 조합, 결합 등을 통해 아이템을 강화하거나 합성하는 절차를 포함하는 ‘유료 콘텐츠’로 늘어나게 된다. 확률 정보 표기도 현행 백분율 외에 분수, 텍스트 등을 추가해야 한다. 유료와 무료 요소가 결합했다면 개별 확률을 이용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그간 학계와 정치권은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사행성이 높고 획득 확률이 낮은 확률형 아이템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 종류와 종류별 확률의 공개 의무 등이 담긴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상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게임업계에 수차례 자정 기회가 주어졌으나 이용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게임업계 주장대로 자율규제 준수율이 80~90%에 달하고 게임법 개정안 수준에 따를 정도로 자율규제를 개정했다면 법제화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게임업계는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특히 게임법 개정안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를 넘어서는 다양한 규제를 포함하고 있어 시장 전체가 침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셧다운제 폐지로 규제 한고비를 지났더니 또 다른 규제가 가해지는 게 아니냔 것이다.
업계는 ‘게임’ 정의에서 영상물 관련 내용을 삭제해 법 적용 대상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고, 명확한 이유 없이 게임사업자에 직접적 자료 제출이나 진술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청소년 기준을 ‘19세 미만’으로 넓게 잡은 것도 문제시하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청소년의 심야 게임을 금지하는 ‘셧다운 제도’가 실효성 논란에도 강행된 뒤 폐지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며 “법적 규제는 한번 시행되고 나면 문제가 지적되더라도 폐지에 엄청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연관된 규제가 잇따라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