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주요 피의자들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스모킹건’을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최근 ‘인권침해’ 논란까지 휘말리며 곤경에 빠진 모습이다.
공수처는 사건 관련 피의자들을 조사하며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전 검찰총장)의 개입 여부를 확인할 단서를 찾아야 한다. 공수처는 사건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검사와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손 검사를 10일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불러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 검사는 지난해 4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재직 시절 부하 검사들에게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작성을 지시했으며, 김 의원은 손 검사로부터 이를 전달받아 조성은(당시 미래통합당 중앙선대위 부위원장) 씨에게 넘겨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공수처는 2일과 3일 손 검사와 김 의원을 각각 처음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조사에서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13시간에 걸친 피의자 소환 조사가 끝난 뒤 녹취록 중 일부 내용에 대해 “기억이 안난다”고 했으며 ‘손준성 보냄’ 고발장을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정확하게 기억 안 난다”고 답변을 피했다. 그러면서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이야기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없었다”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손 검사 조사 때도 공수처는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과 영장 심사 때 드러난 정황증거 외에 특별한 물증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 검사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대부분의 질문에 진술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준성 보냄’ 문구에 대해서는 ‘반송’ 주장을 펼쳤다. 타인이 자신의 텔레그렘에 보낸 판결문을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이같은 문구가 입력됐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손 검사가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공수처가 코너에 몰린 모습이다.
손 검사 측 변호인은 “수사 진행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공수처 검사들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손 검사 측은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공수처가 주임검사에 대한 면담을 거부하고 변호인에게 ‘눈 동그랗게 뜬다’,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라’ 등 비상식적인 언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대검찰청 감찰부가 지난달 29일 대검 대변인의 휴대전화를 영장 없이 임의제출 방식으로 압수해 포렌식을 진행한 것을 두고도 여러 말들이 나왔다. 고발사주 사건 수사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해 난처한 공수처가 대검의 손을 빌리면서까지 무리하게 수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공수처가 영장 발부라는 까다로운 절차 대신 대검을 통해 자료를 확보한 일종의 ‘편법’을 썼다는 비판도 있다.
공수처 내부 분위기를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손 검사의 인권위 진정으로 공수처 수사는 발목이 잡힌 상황"이라며 "인권위에서 수사팀 조사에 들어가면 공수처는 이에 대한 해명에 집중해야하고 기존 수사 진행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손 검사와 김 의원의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출됐다"며 "공수처의 수사가 자칫 ‘야당 후보 흠집내기’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핵심 증거 없이는 공수처도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텔레그램에 ‘손준성 보냄’이라는 증거가 남아 있지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되려면 보다 까다로운 증거와 요건들이 필요하다”며 “당사자들이 ‘모른다’, ‘기억 안 난다’고 하는 상황에서 공수처가 이런 몇몇 증거만으로 기소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