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나 노인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5층까지 올라가기 힘들어요. 노원구에서 임대아파트 재건축 첫 삽을 뜨게 됐는데 이곳이 임대아파트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세요.” (이규달 하계5단지 아파트 회장)
“새로 짓는 것이니 100년은 쓸 수 있도록 잘 지어야죠. 작품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오고 가는 덕담 속에 국내 첫 임대아파트 재정비 사업이 추진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일 오후 2시 20분께 국내 1호 영구임대아파트인 서울 노원구 ‘하계5단지’를 방문했다. 오 시장은 가장 먼저 전용면적 33㎡ 남짓한 아파트 공실 내부를 둘러봤다.
5층 건물임에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탓에 오 시장을 비롯해 아파트 주민 대표, 공무원, 취재진 등 관계자는 일제히 좁은 계단을 이용해 아파트 공실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 주방 겸 거실이 하나 보였고, 그 옆에 작은 방과 화장실이 있었다. 1989년 준공된 아파트인 만큼 작은 세탁기 하나 놓으면 꽉 찰 정도로 좁은 세탁실이 따로 있었다.
좁은 공간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낮은 천장도 한몫했다. 오 시장은 집을 둘러보며 천장이 낮다며 손을 위로 뻗어 높이를 가늠해봤다. 성인 남자가 서서 손을 뻗으면 천장이 닿을 정도로 높이가 낮았다.
이날 공실을 둘러본 오 시장은 재정비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입주민과의 대화에 나섰다. 오 시장은 입주민에게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새롭게 짓는 아파트에 요구사항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이규달 하계5단지 아파트 회장은 “네다섯 식구가 사는 집도 많은데 평수가 넉넉했으면 좋겠다. 같은 평수라도 실용성 있게 지어질 수 있도록 신경 써달라”며 “이 주변이 임대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는데 임대아파트 재정비 사업 첫 삽을 뜨는 것이니 멋있게 잘 좀 지어달라”라고 요청했다.
오 시장은 “평수는 비슷해도 요즘은 실평수 더 많이 나오지 않느냐. 지금보다 좀 더 넓게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사업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잘 만들어보겠다”고 답했다.
현재 640가구 규모의 ‘하계5단지’는 583가구가 거주 중이다. 서울시는 이 아파트를 1510가구로 확대하고, 전용면적도 33㎡에서 49·59㎡로 넓힌다. 또 공원과 다양한 생활 SOC(사회간접자본)를 대대적으로 확충해 공공주택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설계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설계공모를 진행 중이다. 연말까지 당선작을 선정해 내년에는 지구계획과 사업 승인을 완료할 계획이다. 착공은 2026년, 준공은 2028년으로 예정돼 있다.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2025년부터 이주할 예정인데 인근 공공주택이나 신축 임대주택으로 이주하는 방식을 선택하도록 했다. 신축 임대주택의 경우 주변 공원에 2023년부터 건설을 시작한다.
서울시가 진단한 영구임대주택은 △시설의 노후화 △주차공간 열악 △환경 열악 △임대단지의 부정적 인식으로 사회적 소외 야기 등 여러 문제에 노출돼 있다. 그런 만큼 새롭게 추진되는 영구임대주택 재정비 사업은 아파트 단지에서 학교, 공원, 상업 시설로의 이동이 자유롭도록 개방형 단지로 조성한다. 또, 취약계층뿐 아니라 신혼부부, 청년 등이 함께하는 공동주택을 만들고, 이들을 위한 생애맞춤형 공간 복지시설 등을 조성해 사회 SOC를 충분히 공급할 계획이다. 에너지 소비 최소화 및 생산, 공기청정기술 도입 등으로 녹색 단지도 추구한다.
서울시는 하계5단지를 비롯해 1980~1990년대 지어진 영구임대주택 34개 단지 4만 가구를 차례로 재건축ㆍ재개발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에는 노원·중랑구 등 동북권(14단지·1만5360가구), 강남·송파구 등 동남권(6단지·6603가구), 강서·양천·영등포구 등 서남권(13단지·1만5212가구), 마포 등 서남권(2단지·2627가구)에 낡은 영구임대주택이 있다. 서울시는 단지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철거 후 신축 △리모델링 △수선유지 등의 방법을 권역별로 차례로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