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가 온실가스 감축 속도를 현실성 있게 조절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가 수립한 탄소중립 정책에 산업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표명했다. 이제라도 산업계의 의견을 취합해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탄소중립 정책의 평가와 바람직한 산업전환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선 최근 정부가 확정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안’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안’이 다뤄졌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장,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이종수 서울대 교수, 남정임 한국철강협회 기후환경안전실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도 주최 측 인사로 자리했다.
이 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2030년 NDC가 발표된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5월 출범한 탄소중립위원회가 사회적 합의 없이 목표치 상향을 추진했다”라며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안에 조급하게 마련된 2030년 NDC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경제·사회적 영향이 제대로 분석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8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안’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화력발전을 전면 중단하고 온실가스 배출 자체를 최대한 줄이는 A안과, 화력발전이 잔존하는 대신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저장(CCUS) 등 제거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B안 등 2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기존 26.3%에서 40%로 상향하는 안건도 확정됐다.
이 부회장은 이와 관련, “2030년까지 8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나라 탄소중립 기술수준으로는 급격히 상향된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지금과 같이 불확실한 정책과 감내하기 어려운 감축목표는 결국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 뿐만 아니라 감산, 해외이전으로 인한 연계 산업 위축, 고용감소 등 국가 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제라도 산업계 의견을 적극 수용해 2030년 NDC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합리적으로 재설정하고, 기업을 위한 지원방안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라고 했다.
첫 발제를 맡은 이재윤 실장은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탄소중립 기술 투자 인센티브 확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소통·협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탄소중립 인센티브와 관련해선 핵심 사업에 한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탄소중립 기술개발 세액공제 확대,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투자시 입지·설비·무역금융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유승훈 교수는 작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정전, 올해 겨울 텍사스 정전 사태를 예로 들며 "석탄·LNG·원자력 발전까지 모두 퇴출시키는 것은 전력 공급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결국 에너지 전환 자체를 좌초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스위스처럼, 탄소중립 정책을 결정할 때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언급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상향된 NDC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 △안정적인 전력 공급방안 △기업 부담 완화를 위한 적극적인 정부지원 △산업 전환에 따른 노동시장 내 직업교육ㆍ훈련 등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1870조 원), 유럽(1320조 원) 등 선진국과 같이 탄소중립 기술개발을 위한 정부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외국이 주목하고 있는 소형모듈원전(SMR) 등 원자력발전 활용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총은 “우리 기업이 탄소중립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정부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원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라며 “향후 업계 의견수렴을 통해 기업 지원방안 이외에도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등 규제개선 과제를 발굴해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