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가 본격화하면 재정여건이 취약한 신흥국에 대한 우리 수출이 둔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0일 발표한 ‘美 테이퍼링이 신흥국 경제 및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시행한 테이퍼링은 재정위험이 큰 신흥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확대했고 한국의 신흥국 수출에도 다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글로벌 교역에서 신흥국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26.1%에서 2014년 40.8%까지 꾸준하게 확대했지만, 미국이 테이퍼링을 단행한 2014년 이후에는 신흥국 교역 비중이 40%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공 등 금융위기 당시 재정 취약국으로 분류된 국가들에서 타격이 컸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2015년, 이들 국가의 전 세계 수입은 전년 대비 10% 감소했고 2016년에는 18%나 감소했다. 또한, 2016년 이들 국가가 세계 교역 및 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3년 대비 각각 1.0%p, 0.6%p 감소했다. 신흥국의 수입수요가 위축되면서 한국의 신흥국 수출 비중도 2013년 54.7%에서 2016년 53.3%로 1.4%p 하락했다.
다만, 보고서는 중국ㆍ베트남ㆍ대만ㆍ인도ㆍ멕시코 등 5대 신흥국에 대한 수출이 한국 전체 신흥국 수출의 약 75%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미국의 테이퍼링 시행으로 일부 신흥국에 대한 수출이 감소하더라도 전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다소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요 30개 신흥국 중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1%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12개국에 불과하고, 수출 비중이 5%를 넘는 국가는 베트남(8.7%)과 중국(25.1%)뿐이었다.
또한, 테이퍼링을 앞두고 향후 달러화 강세가 장기간 지속하면 원자재를 수입하는 국내 수출 제조업에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일반적으로 달러화 강세로 인해 원ㆍ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최종 수출품의 수출단가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올해처럼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상승하면 원자재 수입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신흥국 경제는 미국의 테이퍼링 시행을 앞두고 다소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8월 잭슨홀 심포지엄 이후 연내 테이퍼링에 무게가 실리면서 신흥국 주가는 약보합세를 보이고 터키, 브라질, 멕시코에 이어 콜롬비아 등 주변국으로까지 금리 인상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그리스, 이집트, 인도 등 일부 신흥국가는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정부부채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80% 이상을 초과하는 등 재정위기 위험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지상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올해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테이퍼링 시계가 예상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다”라면서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포함해 향후 미국의 테이퍼링 방향과 속도를 섬세하게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고, 재정위험이 큰 신흥국과 거래 시 철저한 바이어 신용조사를 통해 거래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