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을 올해보다 8% 이상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정지출 정상화를 준비하는 기획재정부와 갈등이 불가피하게 됐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7일 간담회에서 “올해 예산(558조 원)이 작년 대비 8.9% 늘어났는데 내년 예산도 그런 큰 흐름에서 확장재정을 기본 기조로 편성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신현영 원내대변인은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예산뿐 아니라 글로벌 선도국가로서 코로나19 위기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재정투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적어도 8% 이상의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정부는 방역 안정을 전제로 내년도 예산안부터 총지출 증가율을 점진적으로 낮출 계획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경기 회복에 맞춘 단계적 재정지출 정상화를 권고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021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확장재정 유지를 지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문 대통령은 “확장재정 운용으로 경제가 회복되면서 올해 세수가 큰 폭으로 회복돼 오히려 재정건전성 관리에 도움이 되고 있다”며 “이런 재정 투자의 선순환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기재부는 총지출을 올해보다 7.5% 늘리는 방향의 내년도 예산안 초안을 이달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7%대 증가율은 기재부가 설정한 사실상 ‘마지노선’이다. 내년 지출증가율을 7.5%만 늘려도 내년 예산은 600조 원을 넘어서게 되는 데 여당의 주장대로 8~9%대 수준의 지출증가율이 반영되면 내년 예산은 603조~608조 원 수준이 된다. 세수여건에 따라 재정적자가 대폭 확대될 우려가 있다.
이는 정부로서 큰 부담이다. 통상 대통령 임기 말 편성되는 예산안은 해당 정권에서 사용 가능한 예산이 아니란 점에서 총지출 증가율이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나, 문 대통령은 탄핵 정국에서 선출된 대통령이란 특수성을 지닌다. 기존에는 대통령 선거가 12월 열리고 이듬해 1월부터 대통령직 인수 작업이 진행됐지만,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5월 임기가 시작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가동 전인 내년 1분기까지 국정운영을 책임진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에 여당의 입김이 큰 것도 이런 상황에 기인한다.
여당의 입김이 반영돼 내년도 총지출이 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차기 정권과 기재부에 전가된다. 여당은 선거 결과에 따라 국정 운영에서 손을 뗄 수도 있으나, 기재부는 선거와 무관하게 구멍 난 재정을 메워야 한다.
확장재정 유지를 주장하는 쪽의 명분은 코로나19 4차 유행이다. 연일 1500~2000명대 신규 확진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에 예방접종도 진전이 더디다. 비정규직,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의 추가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 완충장치로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게 당·청의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