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올해 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반면 기아 노조는 “교섭 결렬”을 선언하며 쟁의권 학보에 나섰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 임단협 역시 여전히 교착 상태. 국내 최대 규모의 노동조합인 현대차 노사의 잠정안 합의가 다른 제조사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2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전날 진통 끝에 잠정 합의안을 끌어낸 현대차 노사는 오는 27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연다. 가결되면 2009∼2011년에 이어 10년 만에 맞는, ‘3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다.
전날 현대차 노사는 △기본급 7만5000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성과금 200%+350만 원 등을 담은 잠정안에 합의했다.
노조는 꾸준히 주장해온 '정년 연장'을 포기하는 대신, '6년 만의 최대 임금 인상'이라는 실리를 얻었다. 여기에 고용 안정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위한 복지까지 챙겼다.
반면 “교섭 결렬”을 선언한 기아는 본격적인 파업권 확보에 나섰다.
이 회사 노조는 전날 소하리공장 본관에서 열린 8차 본교섭에서 사 측에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이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앞서 이들은 △기본급 9만9000원 △성과급 전년도 영업이익의 30% △정년연장(최대 만 65세) △노동시간 주 35시간으로 단축 등을 담은 요구안을 제시한 바 있다.
노조가 교섭 결렬을 선언한 만큼, 중노위 조정 결과 등에 따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도 가능해진다.
기아 노조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 측이 우리(노조) 제시안에 대응 자체를 안 하고 있어 불가피하게 교섭 결렬을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기아 역시 노사 양측이 긍정적인 입장을 내세워 큰 틀에서 합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기아 임단협 타결 내용을 보면 현대차의 잠정 합의안에 영향을 받아왔다”라고 말하고 “사실상 현대차 타결안이 기아의 지침이 될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기아 노조에서 교육선전실을 담당했던 한 근로자 역시 “성과급이나 격려금, 전통시장 구매권, 주식 등 명목이 다를 뿐, 협상 총액을 따져보면 양측이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조합원에게 지급을 약속한 주식 역시 현대차와 기아의 기준가가 달라서 지급 주식 수가 제각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동결에 합의하면 기아 역시 동결을, 현대차가 일정 수준의 기본급 인상에 합의하면 기아 역시 해당 금액을 목표로 노사가 합의점을 찾는 게 일반적이다.
기아 노조가 현대차 합의안을 넘어서는 과도한 요구안을 고집할 경우 사회적 비난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노조의 투쟁 명분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아 사 측이 별다른 제시안을 내놓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협상에서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현대차의 잠정안’을 기다려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현대차가 잠정안에 합의했음에도 기아 노조는 결렬을 선언했다"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기아 사 측 관계자는 “(기아)노조가 전날 오후 8차 본교섭에서 ‘교섭 결렬’을 선언했고, 현대차 잠정 합의안은 저녁 10시가 넘어서 나왔다”라며 “현대차 노사는 잠정안에 합의했는데 기아는 파업을 준비한다는 주장은 시간순으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기아 노조의 '전향적 태도 전환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지엠은 전날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부분 파업 등 투쟁지침을 마련했다. 이날 전반조와 후반조 생산직 근로자가 2시간씩 부분파업을 하고 잔업 및 특근도 거부하기로 했다.
노사는 지난 5월부터 13차례 임금협상 단체교섭을 진행했으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조는 △기본급 9만9000원 인상 △성과 및 격려금으로 1000만 원 수준의 일시금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사 측은 △기본급 2만6000원 인상 △격려금 400만 원 지급안 등을 제시한 상태. 양측 견해 차이가 커 난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르노삼성의 사정은 더 어렵다. 올해는커녕 지난해 임단협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노조가 회사의 기본급 2년 동결 요구에 반발해 총파업에 나서자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서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조합원만 5만 명이 넘는 현대차의 임단협 타결은 차 업계, 특히 기아에 적잖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며 “현대차 노조가 무분규 최종타결을 끌어내면 다른 제조사 노조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주장하거나 파업 등을 추진할 때 명분을 잃게 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