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서도 개인·소액 누락돼
글로벌 ‘트래블룰’ 기준 따라야
“‘더티 머니’ 등 자금세탁에 대한 기준을 강화해 가상자산 시장을 정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12일 이투데이와 유선 인터뷰에서 혼돈의 시기에 접어든 가상자산(가상화폐) 시장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 밖에서 자금세탁, 불법다단계, 투자사기, 유사수신까지 노출된 상황에서 자금조달에 대한 규제가 엄격한 주식이나 채권 같이 엄중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문이다.
신 전 위원장은 “옥석 가리기, 소위 대중의 신뢰를 끄는 코인(가상자산)은 활성화가 되고, 그렇지 않은 코인은 도태가 되는 변혁기로 봐도 될 것”이라며 “정부나 중앙 입장에서는 코인에 대한 불안감이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 전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으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금융위를 진두지휘했다. 같은 기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부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퇴임 이후에도 FATF 의장을 맡아 ‘FATF 교육연구기관’을 부산에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자금세탁 및 국제 금융 업무의 전문가로, 현재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으로 지내고 있다.
신 전 위원장은 “가상자산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만, (정부 입장에서)마땅한 규제가 뚜렷하지 않다”라며 “크게 보면 자금세탁에 대한 기준을 강화해 가상자산을 정제하는 수단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을 입법예고, 가상자산사업자의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을 위한 내용들을 추가했다. 가상자산사업자 및 특수관계인이 발행한 가상자산 취급을 금지하고, 가상자산사업자 및 그 임직원의 해당 가상자산사업자를 통한 가상자산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제도화 과정에서 FATF의 기준을 다수 차용했다.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는 1989년 설립된 자금세탁방지·테러자금조달금지를 위한 국제기구다. 미국과 한중일, 유럽연합 진행위원회, 걸프협력회의 등 39개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다. 각국의 이행 상황에 대해 7~8년 주기로 점검하고 상호평가 보고서를 발행한다.
신 전 위원장은 “FSB(금융안정이사회), ISOCO(국제증권관리위원회), BIS(국제결제은행) 등에서도 자금 세탁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지만, 모두 FATF의 기준을 인용하고 있다”라며 “자금세탁의 가장 최고 기준을 제정하는 기관이 FATF인 만큼, 해당 기준을 따라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FATF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가상자산 사업자에 부과한 ‘트래블룰’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트래블룰에선는 가상자산 전송 시 송수신자 정보를 모두 수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 특금법 시행령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지만, 100만 원 이하의 가상자산이 전송되는 경우나 개인에 전송할 경우 적용되지 않았다. 국제 규범에 발맞추기 위해 지난달 30일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는 트래블 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합작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신 전 위원장은 “트래블룰 중 북키핑이라고 해서 송신ㆍ수신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라며 “레드 플래그(Flag), 옐로우 플래그(Flag) 등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여러 직무를 체계화해 관리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국가 금융과 사법 시스템의 투명성을 살피는 FATF 상호평가에 가상자산이 새로운 기준으로 반영되기도 했다.
신 전 위원장은 “FATF에 재임 당시 가상자산(virtual asset)에 대한 조항을 넣었다”라며 “FATF에서 현재 특별히 따로 (가상자산에 대해) 항목을 점검하고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자산을 많이 쓰는 곳은 신인도가 떨어지는 국가들”이라며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자신들이 발행하는 화폐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향후 흐름을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