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산업 재해 규제가 사고 사망자 감소 효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예방 중심의 산재 예방책을 고수해온 영국의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산재 규제 수위가 높기는 하지만, 경직된 방식으로 현장 적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4일 발표한 '영국의 산재예방 행정운영 체계 실태조사 결과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기업과 경영인에 대한 처벌 강화에만 몰두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선진 산업 안전보건 법제를 구축하고 예방 중심의 행정 집행을 통해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영국은 현재 보건안전법과 보건안전청(HSE)을 기반으로, 예방 중심의 산업 안전 정책을 집행한다. 이를 통해 2019년 기준 1만 명당 사고 사망자 비율(사고사망만인율)이 0.03까지 낮아졌을 정도로 효과를 봤다. 같은 통계에서 미국은 0.37, 일본은 0.14, 한국은 0.46 수준이다.
경총은 △규제방식 △조직운영 △인적역량 △예방전략 △협업체계 등 5가지 면에서 한국과 영국의 산재 정책을 비교했다.
규제 방식에선 영국은 보건안전법 제정한 1974년 이후 정부 지시나 명령 규제방식에서 탈피, 기업 자율의 책임관리 방식으로 기조를 전환했다. 한국은 산업안전보건법령에 사업주가 준수해야 할 의무(1222개 조문)를 매우 상세히 규정했지만, 법령에 업종과 현장특성이 고려되지 않아 대기업조차 안전규정을 완벽히 준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경총은 분석했다.
또한, 경총은 나머지 네 가지 비교 기준에선 산업 안전보건 업무 관련 독립적 거버넌스를 구축한 영국 HSE 역할에 주목했다.
경총은 "산업 안전보건 업무의 기능과 모든 권한이 HSE에 부여돼 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됐지만, 한국은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 분산돼 있고, 예산과 사업 등 분야에선 기획재정부의 통제를 받는 실정"이라고 했다.
이어 인적 전략 면에서도 HSE의 감독관은 채용 후 2년간 강도 높은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는 등 훈련 체계가 구축돼 있지만, 한국의 경우 산업 안전감독관에 채용, 체계적인 인사·훈련시스템이 없어 감독관 역량이 매우 낮은 실정이라고 봤다.
예방 전략 면에선 영국은 처벌보다 예방 중심의 다양한 정책을 수립했지만, 국내 정책은 과학적 증거보다는 임시방편식 대책 마련이라고 평가했다.
경총은 “영국 산업 안전보건 정책의 성공은 규제방식의 대전환 외에도 산업 안전보건 업무에 있어서 독립성을 보장받는 보건안전청(HSE) 역할과 효율적인 행정조직 운영방식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라며 “기업과 민간보다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받고 있는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체계적인 감독관 채용 및 인사·훈련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당정에서 산업 안전보건청 설립을 논의하고 있는데, 정부 조직만 확대되고 처벌중심의 행정만 강화되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라며 “산업재해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선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기업 자율에 책임을 둔 규제방식 전환과 함께, 산업안전보건 행정조직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예방중심의 정책이 활발히 추진돼야 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