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시장에 8조 원(74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고 전기차를 현지 생산하겠다고 밝히자 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미래차 전환에 따라 고용 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노조의 불안함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는 전날 성명서를 내고 “사 측의 일방적인 8조4000억 원 투자 계획에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라며 “해외공장 투자로 인한 조합원의 불신이 큰 마당에 노조와 상의도 없이 천문학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은 5만 조합원과 노조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부품수급 문제 등 해외공장의 문제점은 너무도 많다”라며 “지금은 해외공장을 확대하기보다는 품질력을 기반으로 국내 공장을 강화하고 집중 투자하는 길이 현대차가 살길”이라 강조했다.
특히 노조는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준비한 선물용이라면 더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날 금속노조 기아지부 역시 소식지를 통해 “해외공장이 우선이 아니라 3만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 국내공장 전기차, 수소차 조기 전개와 핵심부품 국내 공장 내 생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최우선”이라 밝히며 현대차 노조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
현대차그룹 측은 그룹의 총 투자액과 비교하면 이번에 발표한 미국 투자 규모가 높은 비중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룹은 연간 2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는데, 이번 미국 투자액은 연간으로 따지면 1조6000억 원으로 8% 수준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그룹 관계자는 “국내에 핵심 사업장과 R&D 시설이 대부분 위치함에 따라 전체 투자에서 국내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라며 “미국에서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한 건 바이든 정부의 통상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차원”이라 밝혔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는 지난 대선 당시 “친환경차 산업에서 1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라는 공약을 내걸었고, 과감한 친환경 정책을 예고했다. 추후 전기차나 배터리의 미국 현지 생산을 유도하거나 강제하는 정책이 등장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1월에 정부 기관의 공용 차량을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로 교체하겠다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ㆍ미국제품 구매)’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도 이 같은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전미자동차노조는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현대차ㆍ기아 노조는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며 생산직원의 수요가 줄어들자 ‘고용안정’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반발도 자칫 해외 투자가 늘어나며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출로 분석된다.
양사 노조는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기본급 9만9000원 인상과 성과급 지급 이외에도 정년 연장과 일자리 보장, 신규인원 충원 등의 고용 안정책도 담았다. 이에 따라 그룹의 미래차 투자 계획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과정의 또 다른 의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미국 현지 생산 계획을 밝힌 건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국 내 전동화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차원"이라며 "노조가 고용유지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