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대전화 번호를 바꾼 A 씨는 이전 번호 주인인 B 씨의 개인정보를 의도치 않게 알게 됐다. B씨가 가입한 인터넷 쇼핑몰, 은행 등에서 계속 광고 문자와 이용 내역 알림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일면식도 없는 B 씨의 이름, 주소, 구매 정보 등이 포함된 개인정보가 매일 문자로 날아들자 고민이 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선 이용자가 직접 사업체에 연락해 번호 주인이 바뀌었다고 알리는 수밖에 없다.
광고 폭탄에 지친 A 씨, 개인정보가 노출된 B 씨 같은 이용자들을 위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가 팔을 걷어붙였다. 공공ㆍ금융기관, 대형 쇼핑몰 등에 주인이 바뀐 번호에는 문자 발송을 중지하는 사업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단 계획이다.
6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개인정보위는 내년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휴대전화 번호 현행화 사업(가칭)’을 준비 중이다. 이용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업데이트한다는 의미로 정확히는 ‘휴대전화 해지 시 문자 발송 중지’ 사업이다.
현재까지 개인정보위가 구상한 시스템은 이동통신 사업자로부터 사용이 중단된 휴대전화 번호 리스트를 받아 공공ㆍ금융기관, 대형 온라인 쇼핑몰 등에 문자 발송을 중단하라고 알리는 구조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예산은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지만 일단 3억 원가량으로 잡고 있고, 2022년 예산안에 반영해 내년 상반기 안에 정식 사업화할 것”이라며 “메일 등 기존 행정력을 이용해서 시범 사업을 하면 올해 하반기에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번호 주인이 바뀌었을 때 사업체가 문자 발송을 중단토록 하는 사안에 정부 예산까지 투입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해당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돼서다. 이전 번호 주인이 일일이 은행, 쇼핑몰, 치과 등에 남긴 자신의 번호를 변경됐다고 알려야만 개인정보 노출 문제가 없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정부가 이런 문제까지 나서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개개인이 들이는 노력과 비용을 따지면 효용이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특히 LG유플러스가 2G 서비스를 6월 말 종료한다고 밝혀 번호 이동 관련 민원은 더 늘어날 수 있다. 011, 019 등을 쓰던 사람들이 010으로 번호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3월 기준 LG유플러스의 2G 사용자는 22만7000여 명이다.
다만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이통사가 이용이 중지된 번호를 제공하는 등 협조해야 하고 △문자 발송 대행업체들의 반발을 고려해야 하며 △쇼핑몰 등 민간 사업자들의 협조도 이뤄져야 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사들은 일단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니므로 협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통사들은 문자 발신으로 수수료를 얻는 구조이긴 하지만, 번호 정지 고객에게 문자를 중단하는 것으로 수익에 크게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문자 발송 중단 규모가 크지 않으리라고 보여 수익성 때문에 반발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주인이 없는 휴대전화 번호는 이용 중단 D+28일부터 다른 이용자가 쓸 수 있다.
문제는 문자 발송을 업으로 삼는 대행업체들의 반발이다. 낙전 수입에 의지하지 않는 통신사들이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중소 문자 발송 대행업체들은 협조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에 관해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으므로 이런 시스템이 구축됐다고 홍보를 많이 하면, 이용자들이 사업체에 민원을 넣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연히 따라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번호 사용을 중단한 이용자가 어떤 쇼핑몰, 은행 등을 이용했는지 알 수 없어 개인정보위는 일단 공공ㆍ금융기관에 선적용 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오로지 사용이 중단된 번호만 통신사로부터 이관받을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개인정보 유출은 없을 것”이라며 “공공ㆍ금융기관을 상대로 먼저 실시해 본 뒤 대형 쇼핑몰, 홈쇼핑 등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