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10곳 중 8곳이 통상환경 변화에 속수무책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25일 주요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 301개사를 대상으로 '신통상환경 변화 속 우리 기업의 대응상황과 과제' 결과를 밝혔다. 이번 조사는 13일부터 16일까지 전화ㆍ이메일로 이뤄졌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통상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을 묻는 말에 86.0%가 대응 방안이 없다고 답했다. 대응 방안이 있다는 응답은 14.0%에 불과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응 방안이 없다는 답이 대기업은 75.9%, 중견기업은 85.8%에 달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무려 92%가 대응 방안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통상환경 변화가 기업 경영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42.5%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별로 영향 없을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48.2%,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9.3%였다.
대외활동에 가장 부담을 느끼는 통상 이슈로는 40.9%가 '미중갈등'을 꼽았다. 이어 '환경기준 강화' 25.2%, '비관세장벽 강화' 24.3%, '노동기준 강화' 11.0%, '글로벌 법인세 등 과세부담 가중' 9.6%, 'GVC 개편' 8.3%, '디지털 전환' 3.7% 순이었다.
진출 국가별로는 미국의 경우 '원산지 기준 강화'를 우려한다는 응답이 24.3%로 가장 많았다.
‘비관세장벽 강화’를 꼽은 응답이 22.2%로 뒤를 이었고 ‘반덤핑 등 수입규제 강화’는 18.5%, ‘환경ㆍ노동 등 규제 신설ㆍ강화’는 15.3%였다. 14.3%는 ‘동맹국 위주의 경제협력 강화’를, 4.8%는 ‘글로벌 법인세 도입 등 과세부담 가중’을 우려했다.
중국 진출 기업의 경우 41.7%가 '미국의 대중국 강경 기조 확대'가 가장 큰 부담이라고 답했다. EU 진출 기업들은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환경기준 강화'(34.1%), '비관세장벽 강화'(30.3%)를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기업들이 정부에 바라는 통상정책으로는 'FTA 등 양자협력 확대'가 40.0%로 가장 많았다. 이어 '비과세장벽 대응 강화' 24.6%, '노동ㆍ환경ㆍ디지털 전환 등 신이슈 대응' 18.9%, '다자무역협정 참여 확대' 10.6%, '주요국 GVC 재편 대응' 6.0% 순이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탄소국경세 도입, 환경규제 강화 등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조치들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데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지속되자 기업들이 불안을 표출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고 통상환경 변화를 기회로 전환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 정부의 통상정책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업들 대다수는 포괄적ㆍ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CPTPP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2%에 그쳤다.
다만, 기업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참여는 하되 당장은 보류하는 것이 낫다'는 응답은 36.2%, '미국이 가입할 경우 함께 가입한다'는 응답은 23.9%였다. '참여해야 한다'는 응답은 37.9%로 나타났다.
강석구 대한상의 국제통상본부장은 "미국, EU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통상환경 재편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CPTPP 등 다자무역협정 등을 통해 새로운 통상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 정책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 본부장은 "기업들이 무역협정 확대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통상협력을 계속 확대해야 한다"며 "계속 강화되는 비관세장벽과 환경ㆍ노동 기준에 기업들이 잘 대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