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퍼테인먼트(shoppertainment)'와 '펀슈머(funsumer)'. 최근 유통업계에서 트렌드로 자리잡은 두 신조어다.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합성해 만든 쇼퍼테인먼트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고객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쇼핑을 뜻한다. 펀슈머는 상품을 구매할때 재미를 소비하는 소비자를 일컫는 용어로, 이들은 자신의 소비 경험을 타인과 나누고, 자발적으로 트렌드를 만들어 간다.
업계는 소비 주체로 떠오른 MZ세대가 재미가 있어야 소비한다는 '유잼 소비'에 열광하는 만큼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케팅에 쇼퍼테인먼트와 펀슈머적 요소를 채워 넣는 방식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
최근 펀슈머 마케팅으로 화제가 되는 회사는 매일유업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매일유업은 최근 자사 컵커피 브랜드 '바리스타룰스'를 홍보하기 위해 이호창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과 손을 잡았다. 재벌 3세인 이 본부장은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 이창호의 '부캐'다.
영상에서 매일유업 공장을 찾은 이 본부장은 바리스타룰스 제품 2종을 맛보며 "깔끔하고 부드럽고"라며 "둘 다 놓치기 싫은데?"라고 익살스레 말한다. 그리고 이내 비서인 '김 실장'에게 전화해 "내일부터 회의실에 바리스타룰스 그란데로 넣어주세요"라고 지시한다.
이호창 본부장이 등장한 제품 광고에 소비자는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누리꾼들은 "광고가 이렇게 안 지겹긴 처음이다", "이 집(매일유업) 광고 퀄리티 뭐냐? 세계관에 녹는다", "내일 바리스타룰스 먹으러 간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22일 기준 '이호창 x 바리스타룰스 전략적제휴 공장 시찰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조회수 74만 회를 넘어섰다.
11번가는 21일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유통센터와 진행한 의류 판매 라이브 방송에 개그맨 김해준의 부캐 '쿨제이'를 등장시켰다. 유튜브 ‘피식대학’ 콘텐츠 ‘05학번 이즈 백’에서 활약 중인 ‘쿨제이’는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는 캐릭터다. 쿨제이는 200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비니와 망고나시, 선글라스 차림으로 등장해 ‘길은지’와 함께 봄 신상 의류를 판매했다.
11번가에 따르면 이날 15만여 명의 시청자가 이 라방을 시청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시청자들은 "유튜브 보는 것 같아 재밌다", "은지언니 모자랑 잘어울려요" 등 6524개의 실시간 채팅 메시지와 10611개의 '좋아요'를 보냈다. 11번가는 주로 1만 원대 반팔티, 스커트 등 여성의류를 중심으로 방송 시간 동안 1000여 장의 의류를 팔아치웠다.
GS25의 유튜브 채널 '이리오너라'의 마케팅 방식은 다소 극단적이다. 이 채널에서 개그맨 이용진이 출연하는 코너인 '못배운놈들' 시리즈에는 GS25 제품이 노출되지도, 언급되지도 않는다.
GS리테일은 지난해 9월 유튜브 채널 개편 이후 실제로 '편의점 없는 편의점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중이다. GS리테일은 "'광고성 영상'에 고객이 반응을 보이지 않아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했다"며 "상품이나 광고를 떠나 진정한 웃음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콘텐츠를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그룹 경영 전반에 쇼퍼테인먼트 개념을 활용한다. 특히 올해 초 SSG 야구단 인수는 '정용진식' 쇼퍼테인먼트 경영의 대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의 펀슈머 마케팅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기업은 단순히 이윤을 내는 곳에서 '재미를 만드는 공장'으로 변모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소비 주체로 MZ세대가 떠오르면서 재미있는 기업, 나아가 재미를 생산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