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아산 정주영 회장이 설립한 울산대학교는 2009년 ‘정주영 경영론’이라는 교양 강의를 개설했다. 정 회장의 경영 철학과 기업가 정신을 다양한 측면으로 조명하기 위해서다. 매년 1000명 이상의 학생이 정주영학을 수강했고, 수업 영상은 울산대 공개 강의 플랫폼 ‘U-MOOC’에도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아산은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된 경영학 교육은 당연히 받지 못했죠. 그래서 많은 이들은 정주영 회장 하면 강력한 실행이나 추진력을 먼저 떠올리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정 회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고 간절하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정주영학을 강의하는 김성훈 울산대 경영학 교수가 16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말이다. 김 교수는 정 회장의 통찰력과 인간적인 면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충분한 교훈을 준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대의 조선 사업 진출을 예시로 들며 정 회장이 보여준 통찰력을 높이 평가했다.
김 교수는 “건설업을 하던 현대가 조선업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은 문어발식 다각화, 비관련 다각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반면, 정 회장은 건설에서 쌓은 역량을 조선에서 활용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정 회장은 선박을 ‘물 위에 짓는 건축물’이라 표현하며 현대가 땅 위의 건물을 잘 짓듯, 배도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건설과 조선업에 필요한 역량이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 회장의 생각처럼 사업을 다각화할 때 각 사업이 요구하는 핵심적인 자원과 역량의 유사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전략경영 이론’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경영학의 주류가 됐다.
김 교수는 “아산의 통찰력이 20여 년을 앞섰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깊은 생각은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라고 평가했다.
정 회장의 통찰력뿐 아니라 ‘인간적인 따뜻함’도 본받을 점으로 꼽았다. 정 회장이 진정성을 갖고 직원을 대했기에 그의 추진력과 리더십이 효과를 낼 수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그가 단지 “이봐 해봤어?”라며 다그치기만 했다면, 직원의 지지를 얻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아산은 현장의 노동자에게 동질감과 애정을 느꼈다”라며 “그의 추진력은 인간적인 따스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를 현대 경영학에서는 ‘진정성 리더십’이라 한다”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일찍이 사회공헌에도 힘썼는데, 김 교수는 그 방식도 남달랐다고 평가했다.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의 질을 높이는 ‘전략적 사회공헌’을 택해서다.
정 회장은 현대의 주요 사업장이 자리한 울산 지역을 탈바꿈하는 데 주력했다. 사람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안정적으로 고급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논문에도 정 회장의 이런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 회장은 1969년부터 울산대를 비롯해 5개의 중ㆍ고등학교를 세웠고, 종합병원과 쇼핑센터도 건립했다. 도심의 원활한 교통 환경을 위해 336억 원을 투입해 도로도 닦았다. 교육, 인프라, 복지, 문화 여건을 개선하는 데 힘쓰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이다.
효과는 나타났다. 1962년 8만5000여 명에 불과하던 울산의 인구는 지난해 117만 명으로 14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시행한 삶의 만족도 평가에서도 울산은 평균 이상의 점수를 거두며 상위권에 자리했다.
정 회장은 1977년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해 울산시 외에도 전북 정읍, 전남 보성, 충남 보령, 경북 영덕 등에 병원을 세웠다. 모두 큰 병원이 없던 지역인데, 수익성을 생각했다면 어려웠을 선택이다.
김 교수는 2021년에도 한국 사회가 아산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