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충남 당진에 자리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화입(火入)식’이 열렸다. 본격적인 고로 가동을 알리는 출사표였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임직원의 구호에 맞춰 고로 아래쪽 풍구(風口)로 불씨를 밀어 넣었다. 일제히 환호와 축포가 터졌다.
일관제철소는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쇳물로 건설 강재와 자동차 강판까지 만들겠다는 게 아산의 염원이었다. 그가 못 이룬 꿈은 마침내 정몽구 명예회장의 손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2020년 1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당시)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ㆍ가전박람회인 CES 2020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전환을 선포했다. 지난 50여 년 동안 그룹의 근간이었던 자동차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향해 내던진 출사표였다.
현대차그룹은 상대적으로 일찌감치 미래 먹거리를 확정했다. 여전히 다른 차 회사들이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이미 분야별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19년, 정의선 회장은 임직원과 함께한 타운홀 미팅을 통해 “미래 사업에는 자동차가 50%, 개인 비행체 30%, 로봇산업이 20%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자동차에서 벗어나 도심 항공 산업과 로봇 산업에 뛰어들겠다는 전략이었다.
일각에서는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미래차 기술 주도권을 쥔 상황에 굳이 생경한 분야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 사업영역에서 뽑아낼 이익도 불확실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에 집중된 역량을 새로운 사업에 활용해야 한다는 정 회장의 의지는 뚜렷하다. 이미 글로벌 주요 거점에서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실증 작업이 진행 중이다. 계열사인 기아는 사명까지 바꾸고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기업으로 전환을 천명했다.
이는 정주영 창업 회장의 도전과도 일맥상통한다.
아산은 산업 현대화 시기에 맞춰 건설과 중공업,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를 이어받은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의 고속성장’을 일궈냈다.
3세 경영인 정의선 회장은 이를 발판삼아 다시금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던졌다. 한국전쟁 이후 아산에게는 건설과 조선, 자동차 산업 모두가 생경한 분야였다. 정의선 회장 앞에 놓인 도심 항공 모빌리티와 로봇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에서 젊음을 불태웠던, 이제는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그룹을 바라보고 있는 한 퇴직 임원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전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