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 전진기지인 오스틴 반도체 법인이 우울한 설립 25주년을 맞았다. 현재 오스틴 반도체 공장은 25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이 멈추는 등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이다.
특히 같은 지역의 NXP·인피니언 등 차량용 반도체 공장이 멈추면서 전 세계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도 장기화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오스틴 법인은 2일(현지시간) 텍사스 오스틴 본사에서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데이비드 부츠 삼성SDS 아메리카 선임 매니저가 정상섭 오스틴 법인장(전무)에게 25년 전 기공식에 사용했던 삽을 건네주며 이날을 기념했다.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건축설계 기업 GSC 아키텍처스의 CEO AI 시먼스가 갖고 있던 삽이다.
예년 같으면 대규모 기념행사를 열었겠지만, 이날 행사는 조촐히 진행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다 최근 한파로 인한 가동 중단까지 겹친 탓이다.
오스틴 법인은 1996년 2월에 설립됐으며, 3월 28일 기공식을 갖고 공장 건설의 첫 삽을 떴다. 준공식은 1998년 열렸다. 초기 투자액은 13억 달러였는데, 현재까지 총 투자액은 170억 달러(약 19조 원)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미국 현지 반도체 공장 건설을 결정한 것은 현지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설립 당시에는 D램을 생산했지만, 2011년부터 시스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에 집중했다.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2019년 기준 매출액 3조9000억 원, 당기순이익 5700억 원을 달성했다.
2014년에는 14㎚(나노미터ㆍ1㎚는 10억분의 1m) 핀펫 공정을 세계 최초로 도입해 애플의 A9 칩세트를 수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16일부터 한파로 인한 전기 부족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지역에 이어진 한파와 폭설로 주요 전력 공급원인 풍력·가스 발전이 멈춘 탓이다. 오스틴 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인피니온·NXP 등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공장의 가동을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동 중단 이후, 특별히 바뀐 상황은 없다"며 "현재까지 재가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은 환경·안전장비, 데이터센터 등 기본시설만 가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삼성전자 60여 명, 협력업체 240여 명 등 300여 명의 엔지니어가 파견돼 셧다운 기간에 시설 유지 및 향후 조기 복구, 설비와 제품 검사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업계에선 1~2주 안에 재가동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전력 공급이 여전히 불안정하고, 날씨 탓에 하천이 얼어붙어 반도체 공정에 필수인 용수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공장 폐쇄가 한 달 이상 이어지면 조업 손실액만 4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오스틴 공장은 고객사가 주문한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업체와 계약한 기간 안에 주문받은 물량을 납품하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 있다.
올해 들어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 공급 부족현상도 악화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오스틴 공장에서 차량·모바일·통신 반도체 등 다양한 품목을 생산한다.
삼성전자와 함께 가동을 중단한 NXP와 인피니언은 차량용 반도체 분야 1, 2위 업체다. 반도체 부족에 따른 자동차 생산 차질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도요타, 폭스바겐, 포드, 르노, 닛산 등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업체는 최근 반도체가 없어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가동률을 낮췄다.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도 최근 생산을 이틀간 중단한 바 있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의 주요 생산품 중 하나인 SSD용 컨트롤러 칩세트의 공급 부족 현상도 심화할 전망이다.
한편, 최근 어려움에도 20조 원 안팎의 현지 추가 투자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오스틴법인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현지 정부에 부동산 및 재산 증가분에 대해 최대 20년 동안의 세제 감면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