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불시에 찾아 잠깨는 약 건네
공공장소서 모렴하고 폭언ㆍ화풀이
총선 등 선거 기점 '물갈이' 빈번
24시간 365일, 보좌진의 시계는 쉼 없이 돌아간다. 업무시간이 따로 없다. 업무 강도를 묻자 “늘 세다”란 답변이 돌아왔다. A 의원실 B 보좌관은 “야근을 해야만 일을 잘 하는 것처럼 여기는 영감님(의원을 칭하는 은어)도 있다. 새벽에 불시에 의원실에 와서 잠 깨는 약을 건네며 ‘챙겨준’ 의원도 있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의원 탓에 보좌진이 ‘울며 겨자먹기’로 야근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대체로 국회 보좌진은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강해 탄력근무를 보장받을 수 있는 여건은 아니다. 보좌진 스스로도 정치활동을 하는 일종의 정치결사체로 여겨 근로자 대우를 원하지 않는 일도 있어 의견이 분분하다.
국회 보좌진에게 1년은 봄, 여름, 국감, 겨울이다. 국정감사(국감) 때는 주 52시간이 아니고, 국감 동안 통틀어 52시간 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때를 가리지 않는 업무지시도 보좌진을 괴롭히는 요인이다. 지나치게 보좌진의 휴식시간을 침해하는 경우가 잦다. 지난해 국감 기간 B 의원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온라인 기사를 보좌진에 보내며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꾸짖고 조사 지시를 했다. 이 때문에 해당 보좌진은 한밤중에 부처 공무원에 전화를 걸어 핀잔을 샀다. 여러 사람이 자리한 공공장소에서 보좌진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례도 있다. C 의원은 상임위원회 회의장에서 준비된 질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주무장관에 잘못된 질문을 해 창피를 당했다. 해당 질의서를 작성한 D 보좌관이 자신의 뒤에 자리했는데, 회의 도중 타 의원과 다른 보좌진, 공무원들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C 의원은 D 보좌관에 질의서를 집어 던지고 폭언을 하며 화풀이 하기도 했다.
선거, 주말 지역구 일정, 연휴 등을 가리지 않고 고정된 공무원 임금 체계 하에 별도로 산정되는 금액 없이 수시로 동원되기도 일쑤다. E 의원실 F 보좌관은 “누군가의 소개로 의원실에 임용됐다는 등의 이유로 봉급 일부를 의원실에 내놓아야 하는 일도 있다. 기록이 가능한 후원금으로 처리되는 건 그나마 양반”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에는 이로 인해 의원직 상실 등 실형을 받은 의원도 있다.
총선 등 각종 선거를 기점으로 의원실도 ‘물갈이’ 되면서 부당 사례도 나온다. G 비서관은 “서울 거주자가 정책 보좌관에 임용됐는데,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로 차출한 뒤 지역구에 거주지를 마련해주지 않는가 하면, 지역 선거가 끝난 뒤에도 별도 비용을 주지 않고 지역구로 출퇴근하라는 때도 있다. ‘집에 가란 소리’지만 안 좋게 마무리해 집에 갈 순 없는 노릇”이라고 털어놨다.
부당 대우를 겪는다 해도 표출하기 쉽지 않은 건 ‘평판’이 임용을 좌우하는 까닭도 크다. H 의원실 I 보좌관은 “보좌진 세계를 떠난다 해도 자신의 평판을 보증해줄 수 있는 제일 확실한 사람은 의원 뿐이기에 좋게 헤어질 때까지, 자신의 대타를 찾을 때까지 ‘아름다운 이별’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기업 대관 등 보좌진 경험을 살려 취업할 경우 의원과의 관계 등 인적 네트워크까지 포함해 능력으로 인정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J 보좌관은 “전문가 출신 국회의원은 특정 분야 전문가일 뿐 국회의원이 해야 할 실질적인 업무와는 완전히 별개”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이 국방위원회를 거친 뒤 ‘국방 전문가’라고 내세울 수 있는 현실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협소한 업계 경험을 모든 분야에 적용하는 식의 오판을 하는 의원들이 있다. 여기에서 오는 괴리감이 의정 활동의 방향성을 못 잡은 채 보좌진을 향한 착취와 갑질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비판했다.
K 의원실 L 보좌관은 “21대 국회에선 초선 의원이 많고 개원한 지 1년이 안 돼 아직 (갑질) 생태를 잘 모르는 의원과 보좌진이 많다. 2년이 되면 (갑질 방법을 익혀) 정점을 찍고, 3년 정도 되면 선거가 다가올 수록 다시 자중해진다. 갑질은 나이와 상관없다”고 밝혔다.